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명심해야 할 삶의 지혜에 속합니다. 얼른 보기에 거저 얻은 것 같아도 거기에는 항상 누군가의 희생과 수고가 서려 있지요. 무릇 내가 한 걸음 덜 걸을 수 있는 것은 누군가 한 걸음을 더 디뎠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은 매사에 서려 있는 이 희생과 수고를 흔히 ‘십자가’라고 표현합니다. 각자 지는 십자가의 크기와 형태는 다를지언정, 십자가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외면하고 거부해도, 다른 이가 그것을 대신 질뿐이지 결코 십자가 자체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상을 지탱하는 이 십자가들을 잘 알아보게 되면, 그만큼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나만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구나!’, ‘묵묵히 십자가를 지는 이들 덕분에 오늘이 있구나!’하는 깨달음이 쌓일수록, 불평과 원망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오늘 첫째 독서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의 여정 중에 지친 모습입니다. 종살이에서 해방된 기쁨과 감사는 잊어버리고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불평과 원망을 터뜨리는 지경에 이릅니다. 불만과 원망이 감사를 압도하는 곳에 죽음과 재앙이 덮쳐 올 수밖에 없지요. 이 때문에 이들에게는 일상을 다시 보게 할 계기가 필요했습니다. 자유와 해방의 여정 자체가 하느님의 보호하심과 이끄심 덕분에 가능한 것임을 알게 하는 계기, 그들의 일상이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과 수고로 이뤄졌음을 알게 하는 계기가 필요했습니다. 모세가 기둥 위에 달아놓은 구리 뱀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은 뱀을 치워 달라고 아우성인데, 하느님은 오히려 뱀을 직면하도록 하십니다. 일상의 십자가를 거부하는 백성들에게 십자가의 참 의미를 바로 보라고 권하시는 것이지요.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민수 21, 9) 어려운 시절을 겪더라도 고통을 회피하거나 원망하는 대신, 고통 안에 숨겨진 희생과 수고와 사랑을 알아보게 되면 살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렇듯 구리 뱀이 이스라엘 백성의 삶을 떠받치는 희생과 수고를 상징하는 것이었다면, 오늘 우리 삶을 지탱하는 사랑과 희생의 결정체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 현양 축일은 헬레나 성녀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발견한 것을 기념하여 시작했습니다. 이 축일은 십자가의 고통에만 매몰되지 말고, 그 뒤에 서린 희생과 수고에 감사드리며 십자가를 바라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고 복음은 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 외아들을 희생하셨고, 오늘도 많은 이들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을 따라갑니다. 사랑한다면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들어 높이는 오늘, 우리가 십자가 안에서 그 이치를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목연구소장 박용욱(미카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