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본다. 꽃의 아름다움을 본다. 꽃의 아름다우심을 본다.”(최민순 신부 지음) 저는 이 시가 신앙인인 우리가 살면서 가져야 하는 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꽃을 보는 것은 제일 기본적인 단계인 눈에 비치는 세상, 바로 그 세상을 있는 대로 보는 단계입니다. 두 번째로 꽃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은 눈에 보이지만 관심을 기울여 찾아보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는 단계입니다. 마지막 꽃의 아름다우심을 보는 것은 그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꽃의 아름다움을 보기는커녕 눈앞에 있는 꽃조차도 못 보고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오늘 복음의 말씀 중에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라는 세례자 요한의 말씀은 세상 안에 계시는 구세주를 알아보라는 외침의 소리였던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도 메시아가 반드시 오신다는 한결같은 믿음과 끊임없이 메시아를 일상의 삶 속에서 찾으려고 했던 그의 눈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삶의 눈을 가지지 못하는 걸까요?
그 이유 중의 하나가 한 번씩 우리의 사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도 많은 것을 경험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이 보려고 합니다. 이것도 봐야 되고 저것도 봐야 되고 너무 많은 것들을 챙겨봐야 제대로 사는 것 같은 착각을 합니다. 그런데 어느 책에서 보기를 “참된 지혜는 모든 것들을 다 해보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것들의 본질을 끝까지 이해하고 탐구하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읽었습니다. 수많은 군중 속에서 예수님을 알아본 세례자 요한의 눈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런 시선은 분명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늘 낯설고 새롭게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랑하면 보인다. 숨어 있어도 보인다”라고 한 어느 시의 표현처럼 세상 안에 계신 우리 주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해야겠습니다.
지곡성당 주임 | 성진우(아뽈리나리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