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용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라고 가르치십니다. “마음으로부터 용서”하라는 의미이지요.
오늘 1독서인 집회서에서도 우리가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 이유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네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네가 간청할 때 네 죄도 없어지리라. 인간이 인간에게 화를 품고서, 주님께 치유를 구할 수 있겠느냐?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자비를 품지 않으면서, 자기 죄의 용서를 청할 수 있겠느냐? 죽을 몸으로 태어난 인간이 분노를 품고 있으면, 누가 그의 죄를 사해 줄 수 있겠느냐? 종말을 생각하고 적개심을 버려라. 파멸과 죽음을 생각하고 계명에 충실하여라. 계명을 기억하고 이웃에게 분노하지 마라. 지극히 높으신 분의 계약을 기억하고 잘못을 눈감아 주어라.”
너무나도 가슴에 팍팍 꽂히는 말씀이라 걷어낼 부분이 없습니다.
용서가 힘든 이유는 용서하려는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용서하려는 용기가 나지 않는 이유는 내가 희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비참함을, 무고함을, 분노를 희생해야 합니다. 내가 그런 나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서는 용기가 나지 않고 용기를 내지 못하면 용서하기 힘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아무런 잘못도 없는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하는 용기를 내셨습니다. 그 덕분으로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용서가, 어쨌든 쉽지 않지만, 마음으로부터 진정한 용서를 실천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용기를 내야 합니다. 내가 나 자신을 희생하는 용기를 냈을 때 나는 용서하고 화해를 이루는 참된 기쁨과 환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용서는 희생하는 용기가 만들어 내는 일치와 화합, 즉 사랑의 극치입니다.
옥산성당 주임 | 김종률 스테파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