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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독서와 복음은 주님을 따르는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제1독 서에서 엘리사는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 부모와 작별하고 자신이 몰던 소를 잡아 사람들에게 대접한 다음 엘리야를 따라나섭니다. 과거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 은 한 술 더 뜹니다. 예수님을 따르도록 선택된 이는 가족에게 작별 인사하는 것도, 아버지 장례 를 치르는 것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너무 심하다는 느낌이 드는 예수님의 이 요구는 우리가 복음 의 맥락을 들여다보면 좀 이해가 됩니다. 예수님은 지금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길이었고, 거기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당하실 참이었습니다. 예수님으로서는 참으로 엄중하 고 비장한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순간에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또한 엄중하고 비장할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듭 니다. 이런 배경을 감안하고 예수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살펴봅시다.

 

첫째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하자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하시며 그 사람을 내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아마 이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려는 이유는 세속적인 가치, 즉 부귀, 영화, 명예, 권세를 얻기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름이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 되는 것임을 강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둘째 사람에게는 예수님께서 직접 “나를 따라라.”하고 명하십니다. 여기서 제자 됨이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주님의 선택이 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장례를 핑계로 주님 따라나서기를 뒤로 미룹니다. 주님의 제자 됨은 내일로, 나중으로 미룰 일이 결코 아닙니다. 좀 있다가, 형편이 좀 나아지면, 아이들 좀 큰 다음에, 이 일만 끝내놓고, 등의 핑계를 우리 는 수없이 만듭니다. 하지만 주님을 따름은 지금 여기서 즉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일입니다.

 

셋째 사람은 과거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사람, 곧 과거에 얽매어서 주님을 따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 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라는 말씀은 우리가 과거의 일, 상처, 원한, 실패, 후회, 아쉬움 등에서 벗어나 야 주님을 제대로 따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도 완벽한 과거, 완벽한 부모, 완벽한 가정, 완벽한 학력을 가질 수는 없습니 다. 우리의 과거가 어떠하든 우리에게는 더 이상 거기에 집착할 겨를도 필요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과거에 매달리지 말고 지 금 현재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으로 당신을 따르라고 명하십니다.

 

2019년이 어느새 절반이 훌쩍 지나가버렸습니다. 올해의 중간 지점에 서서 나의 삶, 나의 신앙을 되돌아 봅시다. ‘나는 과연 주님을 제대로 따르는 신앙인인가, 세상 것에 연연하지 않고, 늘 주님의 뜻에 응답하며,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현재의 소명에 충실한 사람인가? 육의 욕망을 채우려 하기보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왔던가, 사랑의 계명을 좇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 랑에 힘써 왔던가?’ 우리 모두 좀 더 온전히 주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가 될 수 있도록 주님의 은총을 청합시다.

 

매일신문사 사장 이상택 리노 신부

2019년 6월 30일 연중 제13주일, 교황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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