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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사이에서 새로운 것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나를, 우리를 위한 것으로 생각 해 보십시오. 하느님의 시 선에서 오늘 말씀이 새로운 삶으로 나에게서 이루어지고 있음에 마음 을 열어 보십시오. 복음을 세상 안에서 나-너-우리로 살게 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읽어 낼 수 있겠습니까? 복음의 과정을 지나간 결과, 삶의 자리로서의 공동체의 무한한 풍요로운 열매를 상 상해 보십시오. 그러면 나와 우리를 위한 하늘 나라의 초대에 이웃이 되어줘야 할 고통받는 이 들을 보내주신 주님의 성심을 헤아릴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청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분명 하늘 나라의 진정한 표지를 그 안에서 보고 발견한 이들에게는 새로운 것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교회가 새 로 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고통받는 이들 사이에서 인간 존엄성에 대한 새로운 자각으로 다시 생명력을 회복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 말씀은 일상생활에서 뗄 수 없는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성경의 구원의 메시지에 대한 충실함과 변화를 위한 우리의 역량을 확인하는 기점이며 핵심적인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재 나-너 그리고 우리 공동체는 사회에서 자리를 갖지 못한 이들,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그들의 삶이나 고생을 알아주지 않는 이들을 어떻게 만나고 있습니까? 혹시 나-너 그리고 우리 공동체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현실 앞에서 자신의 안전을 지키고, 자신의 자리를 고수하고, 자신의 갈 길을 가기 위해 자주 침묵하지는 않았는지요? 그런데 침묵의 시간 중에 우리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질문이 “누가 내 이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이를 통해 알지도 못하는 한 부상자를 살리기 위 해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내어준 사마리아 사람의 마음은 오히려 ‘형제’와 ‘적’을 구별 못하는 현명치 못한 처세로 취급되지 는 않았습니까? 어쩌면 이러한 소박한 관심은 오히려 응답을 받지 못하고 소외당하고 이해를 받지 못하며 심지어 비난받지 않았던가요? 그렇다면 나-너 그리고 우리 공동체는 더욱 복음에 희망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것은 전 에는 마치 앞을 볼 수 없는 장님이었다면, 불을 켜는 일과 같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새로 태어나려는 우리들의 자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기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면 나-너-우리 공동체는 울타리 -스스로 만들어 안주하며 살아가고 있는 어떤 울타리, 곧 자기 자신이나 가족 아니 면 공동체 또는 민족일 수도 있는 울타리- 를 열고, 밖으로 나가 고통받는 자매 형제들에게 가까운 사람, 곧 이웃이 되어 주 어야 합니다. (주 하느님께서 몸소 우리에게 가까운 분이 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이 우리 중의 한 사람이 되 게 하셨고, 당신의 아드님은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지 않습니까!)


이렇듯 스스로 만든 울타리를 열고 나와,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창조해 주신 세상을 마음껏 숨 쉬며 ‘이웃’과 함께 살아 가는 삶, 바로 ‘하느님 사랑’의 삶을 예수님께서는 이르셨습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구암본당 주임 박진수 시메온 신부

2019년 7월 14일 연중 제15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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