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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동물과 달리 가치 있는 죽음을 선택할 줄 압니다. 그래서 나라를 위해, 의리를 위해, 혹은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순교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하느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고 그 사랑을 지키고 증거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예수님은 참 대단하신 분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목숨을 바칠 만큼 날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해서 목숨을 던진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분이십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사형수에 불과한 예수님에게 무슨 매력이 있어 그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었을까요.


  순교자들도 아무런 이유 없이 목숨을 던지지는 않습니다. 이 세상에 한 번 살면서 편안히 잘 살고 싶은 것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마음입니다. 또한 자기 생명을 귀히 여기지 않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신앙 때문에 목숨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이 분명 계시고 그분은 모든 생명의 주인이시며 그분 안에서 누릴 영원한 삶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순교는 가장 완벽한 사랑의 표현이며 자기 신앙의 증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명품을 좋아합니다. 하느님도 명품을 좋아하십니다. 하느님을 닮은 사람, 하느님을 죽기까지 사랑한 사람은 하느님 볼 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명품 자녀입니다. 순교자들은 죽은 자가 아니라 생명의 하느님 안에 새로이 태어나 불멸의 기쁨과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도 역시 순교자들의 믿음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믿기에 그분들을 공경하고 그들이 보여준 불굴의 신앙을 본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신앙의 자유 속에 하느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외부의 박해를 받는 일은 없습니다. 오늘날의 박해는 외부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다고 봐야 합니다. 주일의 의무를 지키지 못하는 건 내가 쉽게 이유를 만들고 핑계를 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남이 나의 신앙을 박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나를 박해하는 겁니다. 오늘날의 순교는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나 자신의 나태함, 불신, 유혹, 욕망을 이기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순교입니다. 일상에서 화나는 일 한 번 참는 것, 나에게 잘못한 이를 주님 때문에 용서해 주는 일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영적 순교일 것입니다.


  오늘 순교자 대축일에, 우리도 순교자들의 위대한 신앙을 돌아보고 그분들의 후예로서 우리 삶 안에서 어떤 자세로 순교자의 삶을 본받아 따를 것인지 다듬어 보는 은혜로운 축일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효성초등학교 교장 최종현 베드로 신부

2019년 9월 22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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