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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지난 2001년부터 매년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정해 기념하고 있지만, 아직도 자비 주일이 왜 제정됐으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는 교우들이 적지 않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2000년 4월 30일 ‘하느님의 자비의 사도’로 알려진 복녀 마리아 파우스 티나 코왈스카 수녀(1905∼1938)를 시성하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특별히 기념할 것을 당부했고, 이에 따라 2001년부터 부활 제2주일을 자비 주일로 지내도록 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새 삼스러운 것도 아닌데 교회는 왜 자비 주일을 제정했을까요? 그것은 오늘날 사회가 ‘하느님의 자비’를 필요로 하기 때문인데, 즉 세계 곳곳에서 기아와 빈곤에 시달리는 이들이 늘고 있고, 인 간의 이기심으로 인한 분쟁과 폭력 등이 난무하는 현실을 타파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없는 사랑과 용서를 바탕으로 한 ‘자 비’뿐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성경의 단어가 있습니다. “스플랑크 니조마이(σπλαγχνι 'ζομαι)”라는 단어입니다. 우 리 성경에는 “측은히 여기다.”라고 번역되는 말인데, 이 단어는 인간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애절한 감정을 설명하는 데 도 쓰였습니다. 가식이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뜨거운 감정, 그것을 표현할 때 쓰였는데 특히 불쌍한 사람을 보면서 느껴지는 연민과 긍휼의 뜨거운 마음을 표현할 때 쓰였습니다. 그 뜻을 우리가 알아듣기 쉽도록 표현한다면, “애간장 이 끊어지 도록 불쌍히 여기시다!” 정도가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 하느님의 ‘함께 아파하시는 자비’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자비를 입은 사람은 자비를 베풀 수 있으며, 자비 로운 사랑의 실천이야말로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살아있는 신앙고백이 될 것입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 한 20,29)라고 하신 주님 말씀의 깊이에는 ‘부활의 영광을 입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하느님 사랑과 자비를 삶을 통해 실천 하고 그로 말미암아 지금 그리고 영원히 행복하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마태 18,33)

 

죽도본당 주임 김도율 요셉 신부

2019년 4월 28일 부활 제2주일, 곧 하느님의 자비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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