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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조그마한 음식점에서 일손이 부족하여 도우미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을 구하는데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었습니다. A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정해진 일을 하였지만, 그 외의 일은 본인의 일이 아니라 생각하여 그냥 시간을 보내는 유형입니다. B는 시간과 하는 일은 A와 같았지만 손님이 없을 때, 식당 내부의 눈에 거슬리는 것과 주방의 일도 도우고 주인이 시키지 않은 일까지 하곤 하였습니다. 주인의 입장에서는 두 사람에게 임금은 똑같이 주지만 둘 중 어떤 사람이 가게에 남아서 자기 일을 도와주기를 원하겠습니까? 혹 다른 사람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누구를 보내고 누구와 함께 일하고 싶겠습니까? 요즘 시대에 B와 같은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겠으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자기에게 향하는 사랑을 자기가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이 한 세상을 살면서 만남도 있고 헤어짐도 있습니다. 생각해 볼 문제는 헤어졌을 때 그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오히려 떠난 것에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경우는 떠난 사람의 모습, 인성, 배려 등 타인에 대한 생각이 많고 수고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대의 경우는 타인에게 불편함만 주었기에 떠남이 고맙게 느껴지리라 생각됩니다. 결국 내 모습 속에 내가 사랑 받을 수 있도록 행동하느냐가 문제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낼 때는 세상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물질주의, 개인주의 등 자기중심적인 세상이 되다보니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과연 올바른 모습일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를 두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을 드러내려 하는 그 모습이 하느님으로부터 벌을 받게 됨을 가르쳐 주십니다. 타인을 인정해 주어야 나 자신도 인정받는 모습이 될 터인데, ‘나만을 위해’, ‘내 것을 위해’라는 식의 모습은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모습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갈 터인데 말입니다.


평신도 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즐겨 부르는 성가 중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랑으로 우리를 보내셨는데 사랑받을 수 있도록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힘듦이 나를 영광스럽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사랑받을 수 있도록 한번 살아봅시다.

 

두류본당 주임 한재상 요한 신부

2018년 11월 11일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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