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미국에서 교포 사목을 하던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사목위원들과의 자리를 마치고 귀가하는데, 성전 옆 작은 쉼터에서 꽤 큰 사람의 형체가 어렴풋이 보였습니다. 타인의 주택이나 건물에 무단으로 들어가는 일이 엄격히 금기시되어 있는 곳이고 더구나 밤 시간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온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가까이 가보았는데 한눈에도 노숙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누워있는 것을 확인하고 일단은 사제관으로 들어왔는데, 소파에 앉는 순간부터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마음이 불편해지는 겁니다. ‘저 분이 앞으로도 계속 오시면 어떻게 하지? 신자들, 특히 아이들이 있을 때 오면 위험할 수도 있을 텐데, 지금이라도 나가서 다른 곳으로 가시라고 해야 하나?’ 이런 생각들을 하는 중에 불현듯 제가 참 못난 고민만하고 있다는 부끄러움이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저의 불편함은 오로지 그 사람으로 인해서 겪을 저의 불편함 때문이었고, 그 사람의 불편함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불편한 잠자리, 더운 날씨, 벌레들, 허기 등으로 힘들어할 그 사람의 불편함에 대한 배려와 공감은 전혀 없었던 제 자신이 참 부끄러웠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 또 다른 갈등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도와줄 수 있지?,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나?, 저분들은 돈을 드리면 술을 드시거나 마약을 산다고 하던데…, 사제관으로 불러서 함께 잘 수도 없는 것 아닌가?’ 등등의 결론이 나지 않는 생각과 마음의 불편함이 계속 되었습니다.


결국 제가 한 행동은 시원한 음료수를 하나 가지고 깊이 잠들어있는 그분 옆에 놓아두고 온 것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턱없이 부족한 실천에 불과했지만, 사실 지금까지도 그때 제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었을까에 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경험을 통해서 배운 것이 있다면, 가난한 이들을 바라볼 때 나의 불편함이 기준이 아닌 그분들의 불편함에 공감해야 한다는 것과, 자신이 조금이라도 불편해질 용기가 없다면 작은 애덕의 실천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교형자매여러분, 우리는 올해로 두 번째인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아픔에 똑같이 공감하시고, 스스로 고통 받고 불편해지시기 위해서 우리와 함께하셨습니다. 주님의 한없는 사랑을 받은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세상에 되돌려 주기 위해서 세상의 가난한 이들과 함께 아파하고 함께 불편해질 수 있는 용기를 주십사고 청했으면 합니다.

 

선목해은학원 사무차장 이정욱 안드레아 신부

2018년 11월 18일 연중 제33주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

 

?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