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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 다시보기’라는 기능이 있습니다. 이 기능의 목적은 보고 싶었지만 보지 못했거나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기능의 목적을 제대로 이루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기존에 가지고 있는 정보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다시보기’ 기능을 우리의 삶에서도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삶에서 뿐만 아니라 신앙에서도 따분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따분함을 느끼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일상에서나 신앙에서 새로움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늘 봐왔던 것이나 나의 생각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들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요즘, ‘다시보기’를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보기’를 오늘 복음의 바르티메오의 상황을 통해 배우면 좋겠습니다.


바르티메오는 어떤 이유에서 눈먼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기회가 왔고 다시 보기 위해 예수님께 간절히 외치며 자신의 모든 것과도 같았던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서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는 다시 볼 수 있게 되었고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거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바르티메오는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제자들을 부르실 때처럼 “나를 따라라.” 하지 않으셨음에도 그는 제자처럼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그 이유는 눈이 멀었을 때 자신이 생각만 했던 화려하고 권력의 정점에 있어 도저히 자신과 어울릴 수 없는 “다윗의 자손”이 아닌, 소박하고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군중과 함께 어울리며 인자한 모습을 보이시는 새로운 “다윗의 자손”을 “다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거라.”라고 하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따라나선 것 입니다.


우리도 이런 바르티메오처럼 우리의 삶과 신앙을 다시 봐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다시보기 위해서는 우선 바르티메오처럼 모든 것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기준, 선입견과 판단들을 겉옷 벗어 던지 듯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삶과 신앙에 대해 눈먼 상태가 되었을 때 간절히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면 예수님께서는 분명 우리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보게 된 우리의 눈은 새로움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문제아에게서 놀라운 재능이, 꼰대에게서 지혜로움이, 미운사람에게서 사랑스러움이, 죄 많은 사람에게서 용서가, 불의한 세상에서 하느님의 정의가, 고통의 십자가에서 부활의 영광이, 보잘 것 없는 나에게도 구원이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롭게 보게 된 눈으로 더욱 선명하게 예수님을 따라 나설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이렇게 “다시보기”를 사용하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구시교육청 가정형 Wee센터장 김민수 레오 신부

2018년 10월 28일 연중 제30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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