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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인 머무름의 시간

 

오늘 복음에서 가장 먼저 ‘머무르다.’는 말이 마음에 들려옵니다. 모든 것이 오직 활동으로 평가받는 요즘 세상에서 조금은 생소한 말처럼 들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멈추고 가만히 머무르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들에게 머무른다는 것은 일종의 죽음, 자기 자신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머물러야 하는지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되도록 밤에, 홀로, 산으로 물러가셔서 자주 기도하셨다.”(마르 1,35; 6,46; 루카 5,16 참조) 예수님께서도 분명 엄청난 활동가이셨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당신의 수많은 활동들 이전 혹은 이후에, 그리고 그 사이에 홀로 하느님 아버지 앞에 머무르셨습니다. 이렇게 굳건해진 성부와의 친밀한 일치가 그분의 모든 활동에 역동적으로 메아리쳤기에, 예수님께는 활동도 기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 ‘머무름’은 절대적으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깊고 내밀한 기도의 시간을 뜻합니다.


‘활동주의’라는 시대적 영향 아래에 놓인 우리들은 하느님의 손안에 가만히 자신을 놓아두고 맡겨드리는 시간을 외면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사람들은 이런저런 활동을 넓은 의미에서 기도라고 합리화시키고, 철저히 주님과 나만이 온전하게 머물러야할 내밀한 기도의 시간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 없는, 눈에 보이는 업적 쌓기의 향연입니다. 하느님이라는 과정 없는 이 결과는 거센 비바람이 불어오면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체험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말씀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겠지요.


머무름이 충만해지면 ‘열매 맺는다.’는 것이 복음의 진실입니다. ‘성공하는 것’과 ‘열매 맺는 것’은 다른 말입니다. 내밀한 기도의 시간 없이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하느님께서 머무르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 없는 이 활동을 나 자신이라고 착각하고 열매 맺지 않는 가지로 “밖에 던져져 말라갑니다.” 반면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는 말씀에 따라 우리 활동이 열매를 맺게 되면 우리 자신의 존재는 하느님과의 일치 안에 있고 그 무엇도 이것을 빼앗아갈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정창주 프란치스코 신부

2018년 4월 29일 부활 제5주일(이민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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