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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나라, 그 기다림의 미학

 

모소 대나무를 아십니까? 중국 극동지방에서 자라는 희귀종 대나무입니다. 씨앗에서 싹이 움튼 모소 대나무는 농부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4년 동안 3cm밖에 자라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대나무가 죽었거나 원래 자라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지요. 하지만 농부는 때를 기다립니다. 4년이 지나고 5년째 되는 어느 날, 이 대나무는 하루에 무려 30cm씩 자라기 시작하고, 6주 만에 15m 이상 자라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울창한 대나무 숲을 이루게 되지요. 4년에 3cm의 성장속도가 어떻게 하루에 30cm로 변화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자라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4년이란 긴 시간 동안 폭풍성장을 준비하기 위해 아래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백 제곱미터에 이르는 그 뿌리를 위해 농부는 4년이라는 긴 시간을 견디어 냅니다.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사라진 것 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기다림”입니다.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 이 책 저 책 찾아가며 알아가는 숙성의 시간들이, 시계탑 앞에 오도카니 서서 기다리는 연인의 마음들이, 여행 중 잠시 차를 세워 찾아보고 물어보던 찾아감의 즐거움이, 군대 간 아들의 안부를 기다리는 부모님의 궁금함이 사라져 갑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인터넷 검색을 하면 됩니다. 연인들은 실시간으로 통화를 하며 만나고 싶을 때 만납니다. 차량 내비게이션이 있어서 여행 중 길 헤맬 일은 없습니다. 매일매일 군대 간 아들의 근황을 인터넷으로 확인하고, 전자편지를 바로 쓰고 보낼 수 있는 세상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에서 “기다림”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에 대해 알려주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미 그러나 아직”이라고 합니다.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가 바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농부가 어떻게 싹이 터서 자라는지 알지 못하지만 수확의 때를 기다리듯이, 모소 대나무의 느린 성장에도 조급해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폭풍성장의 때를 믿고 기다리는 농부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뿌려진 하느님의 나라라는 씨앗이 자라기를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의 나라는 분명 우리 안에 자라고 있습니다. 빨리 확인하고 싶고 그래서 하느님께 더 보채고 싶겠지만,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굳은 믿음이며 끈기 있는 기다림입니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고 성실히 기다릴 수 있도록 주님께 항구함을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안강본당 주임 ㅣ 박재철 안토니오 신부

2018년 6월 17일 연중 제1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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