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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히 여기시어...

 

대구대교구에서는 어려울 때에 다른 나라로부터 받은 도움을 생각하며, 교구를 중심으로 들꽃마을과 함께 2012년부터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남종우(그레고리오) 신부와 배재근(프란치스코) 신부를 파견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복음 선포의 사명을 가슴에 품고 뜨거운 마음으로 뛰어들어가자마자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은 내전의 소용돌이에 다시 휘말려 들었습니다. 구석구석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함께하고자 했던 마음과는 달리 매일 매시간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들고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신부님들은 밤마다 가만히 사제관에서 버텨야만 했습니다. 사제관에서 몸을 움츠리고 숨어서 오직 성경을 읽고 한글로 번역하고 아프리카어 사전을 만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재작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추기경님께서 고령 들꽃마을을 방문하셨을 때 하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전체를 통틀어 한국 사람은 수녀님 몇 분과 신부님 두 분 뿐인데 우리 신자들이 밤에 총소리를 들으면 신부님들이 계신 사제관을 바라봅니다. 거기에 불이 켜져 있으면 가만히 있고, 불이 꺼지면 모두 짐을 싸고 도망을 갔습니다.”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나라에서 와서 자신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함께 있어 준 신부님들이 신자들에게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는지를 회고해 주셨습니다. 비록 내전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기였지만 신자들에게는 사제관의 불빛이 어둠 속에 빛나는 생명의 빛과도 같았고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측은히 여기시어...” 일어나 다가가 “울지 마시오.”(루카 7,13)하시며,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고”(마르 6,34), “손을 펴 만지시며 깨끗하게 하시고”(마르 1,41), “눈을 뜨게 해 주시고”(마태 20,34), “환자들을 고쳐주시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마태 14,14-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어둠의 내전이 끝나고 낮의 일상을 함께 살아가야할 때가 왔습니다. 두렵고 아픈 마음을 함께하였던 시간을 일상에서 계속 이어 가야할 때가 왔습니다. 이제 낮이 되어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일어나 다가가 위로하고 가르치고 치유하고 살리는 일입니다.


“교우 여러분들이 빛이 되어 그들을 살려주소서!”

 

들꽃마을 원장 이병훈 세례자 요한 신부

2018년 1월 28일 연중 제4주일(해외 원조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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