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겉과 속

 

‘지향(志向)’은 행위의 숨은 뜻을 말하고, ‘표양(表樣)’은 행위의 겉모습을 뜻합니다. 지향과 표양의 뜻을 생각하며 성전 정화 사건을 보겠습니다. 성전 정화 사건의 지향은 하느님의 집에 대한 예수님의 열정입니다. 예수님께서 끈 채찍을 휘두르셔서 성전 마당을 난장판으로 만드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요한 2,16)는 아버지 집이 시장터로 변한 모습을 용납할 수 없었던 예수님의 열정이 과격한 표양으로 드러났습니다.


반면 유다인들의 질문은 점잖은 표양으로 진행됩니다.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요한 2,18) 그러나 그들의 지향은 어떠했을까요? 진실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고 싶은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예수님을 거짓 메시아로 밝혀서 자신들이 옳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것이었을까요?


이처럼 우리 역시 지향과 표양이 상반된 상황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눈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위의 경우를 우리는 겉과 속이 다르다고 하지요. 겉과 속이 같은 채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지 못하기에 우리의 일상은 고통이 더 크지 않을까요? 예수님처럼 거친 표양 뒤의 착한 지향은 당장은 오해를 사더라도 결국 이해로 결론지어집니다. 하지만 유다인들 같은 점잖은 표양 뒤에 숨은 악한 지향은 관계의 단절과 상처로 끝이 납니다.


사랑하는 신자 여러분,
때때로 사제나 수도자의 거친 표양에 상처를 받거나 봉사자들의 유사한 언행에 상처를 입고 신앙생활을 힘겹게 해나가셨던 경험들이 크든 작든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행위와 유다인의 행위를 살펴보면서 신자 여러분이 지향을 먼저 보게 해달라는 기도를 정성껏 드립니다. 또한 나의 표양이 참된 지향을 바탕으로 하는 지에 대한 성찰을 해보는 한주간이 되어 보는 건 어떠신지요? 여러분들의 겉과 속의 일치가 조금이라도 이루어져서 서로에게 평화와 기쁨이 되기를 바라며 부족하지만 여러분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용성본당 주임 장운철 마르첼리노 신부

2018년 3월 4일 사순 제3주일

 

?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