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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화는 세(勢) 불리기가 아니라 사랑의 연대입니다

 

복음화와 선교는 그리스도교 정체성의 핵심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처럼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님에게서 “세상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성인들이 복음을 선포하였고, 그 복음을 지키는데 목숨을 바쳤으며, 지금도 세상 곳곳에서 수없이 많은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가 열악하고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는 단순히 경쟁자와 땅따먹기하는 게임이나 기(氣) 싸움이 아닙니다. 물론 과거 교회 역사의 몇몇 시기에는 그런 경쟁적인 욕심으로 다른 신앙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핍박하거나 자기들의 세를 불리는 데 집착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의미의 복음화가 아니었습니다.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선교는 더 이상 복음화가 아니며 오히려 더 큰 갈등과 상처, 무엇보다 씻을 수 없는 깊은 원한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픔의 역사를 기억하는 지금도 우리는 종교와 정치, 사상과 인종, 문화의 대립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을 바라봅니다. 더 나아가 가슴 아픈 과거 역사의 한 페이지를 머나먼 다른 나라 뉴스가 아니라 우리 눈앞의 현실로 다시 접해야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에 두렵고 걱정됩니다. 이런 걱정 때문인지 주변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정답이고 정의라고 부르짖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강대 강의 대립만이 진정 우리가 살 길이고 복음화의 방법일까요?


이 험난한 시대를 사는 우리는 과거보다 더 큰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더 엄중한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을 근거 없이 흥분시키고 분노케 하고 거침없는 막말을 쏟아내는 사람, 그런 험한 분위기를 조장하고 부추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우리의 평화를 깨트리고 복음을 거스르는 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오히려 진정한 복음화는 사랑과 인내와 용서의 연대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신 것은 폭력과 위협으로 상대를 물리치고 세를 불리라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감싸 안고 용서하고 배려하고 도와줌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라는 명령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요? 맞습니다. 무척 어렵습니다. 하지만 바르고 좋은 일에는 반드시 수고와 인내가 따릅니다. 그러므로 열악하고 위험한 선교지에서 헌신하는 선교사들만이 아니라, 대립과 갈등이 만연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사랑의 선교사명을 새롭게 각성하고 실천해야할 때입니다.

 

대구청소년수련원 원장 강진기 안드레아 신부

(2017년 10월 22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전교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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