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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빵

 

참 편리한 세상이지만 해야 할 걱정도 많은 시대입니다. 녹록지 않은 경제사정, 자녀교육과 진로문제, 취업, 노후준비 등 삶이 우리에게 내주는 숙제들은 열거하기 벅찰 만큼 많습니다. 간혹 신자분들과 나누는 대화에도 자연스레 묻어 있는 주제들이고, 이런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한 신앙인으로 살아왔으며 또 살고 있습니다. 사목은 봉사라고 배웠는데 함께 걱정하는 것, 함께 고민하는 것, 함께 인내하는 것도 사목의 한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이런 와중에 예수님께서 ‘몸과 피’를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거저 주심을 일깨우는 오늘 전례와 말씀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바꿔 말씀드리면, 왜 우리는 성당에 모여 말씀을 듣고 빵을 떼어 나누는지요? 성체를 모셔도 일상은 별로 바뀌지 않는 듯하고 한 인간의 성품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성체는 보이지 않는 분께서 ‘나의 지금 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는 긍정적 표현이자 증거입니다. 아울러 우리 영혼에 사랑을 담아주시고 죽음의 씨앗을 쫓아 내며 영원히 살게 해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세상에 있는 ‘작은 빵’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세상의 것을 넘어선 무엇을 우리에게 주고자하시는 선물이 바로 우리가 모실 성체입니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고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을 이루는 작고 하얀 빵. 땅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작은 빵에 불과하지만 하늘의 눈으로 보면 어떤 가치를 담고 있는지 헤아리기 어려운 거룩한 몸, 살과 피, 바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성체를 모시면서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 부활 사건에, 그분의 사명에 훌륭하게 참여하게 되는 것은 아닐는지요?


작은 빵을 받으면서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 그 삶 전체를 함께 받아들인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성체를 모심은 품위 있고 당당하며 멋지게 살다 하늘로 오르신 하느님이시요 참 사람이셨던 분을 내 안에 모시는 행위, 아무나 참여할 수 없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을 나와 이웃과 세상에 한 올 한 올 풀어내야 하는 소명도 함께 받게 됩니다. 서로 위로해 주고 이해해 주고 따뜻함을 나누고, 그래서 나와 타인을 살리는 소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대신하되 그분과 함께 그 삶을 되살리는 일이 우리 몫이 되는 셈입니다. 많지 않더라도, 눈에 확 뜨이지 않더라도, 그리 거창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오늘 이 미사에서 받아 모실 작은 빵, 성체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이 더운 날 성당에 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포항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 전상규 베르나르도 신부

(2017년 6월 18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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