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흰색 돌로 지어져 화려하게 장식된 예루살렘 성전에 사람들이 마냥 감탄할 때, 예수님은 성전이 돌무더기조차 남기지 못하고 허물어지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 앞서 전쟁과 천재지변, 기근과 전염병, 박해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지요. 과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후,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와 네로 시대(기원후41~68)의 지진과 기근, 아그리파스 1세 임금과 총독들 치하에서 사도들이 겪은 박해, 1차 유다 독립전쟁(기원후 66~70) 등이 실제로 일어났고, 마침내 예루살렘 성전은 로마군에 의해 건물과 성벽 모두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기원후 70). 교회는 예수님의 ‘종말 담화’(루카 21,5-36)가 단순한 비유가 아님을 알기에, 전례 주년의 막바지마다 그것을 늘 엄중하게 되새깁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종말의 전조와 비슷한 일들이 오늘날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온난화와 천재지변,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유례없는 홍수와 산불, 지독한 기근과 전염병, 국가 간 군사 충돌과 핵 전쟁의 위협 등을 수시로 접하면서, 사람들은 공멸(共滅)의 위기에 무관심한 이들과 종말을 운운하며 염려하는 이들로 나뉩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우리 신앙인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보다 종말의 전조들을 “무서워하지 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하신 말씀은 종말의 전조와 실제로 종말이 이루어지는 때 사이에는 시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는 이 땅에 시작되었고, 이미 우리는 그 완성을 향한 종말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 속 인물들처럼, 종말이 ‘언제’, ‘어떤 표징과 함께’ 올지 알아내려고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1독서에서 말라키 예언자는 종말이 악인들에게는 불붙는 징벌의 날이 되겠지만, 하느님을 경외하며 충실히 산 이들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는 날”, 즉 구원의 날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마련해두신 그때가 언제인가?’가 아니라, ‘지금의 나는 그때를 두려움이 아닌 희망과 기쁨으로 맞이하기에 합당한 모습인가?’이겠지요.

 

 

 

예수님은 우리의 시대가 그 무엇보다 ‘증언의 때’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신앙과 윤리의 위기 속에서 때로는 세상의 논리에 맞서다 고초를 겪기도 하겠지만, 성령께서 주시는(“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기쁨과 희망을 간직한 삶을 충실히 드러내어 다른 이들에게 ‘구원과 생명의 표징’이 되어주라는 주님의 당부일 터입니다. 2독서의 바오로 사도처럼 묵묵히 “수고와 고생”을 감내하며 주위에 “모범”을 보이는 나의 일상’이, 성령께 의탁하며 주위에 무너진 하느님의 정의와 질서를 다시 세우는 ‘나의 오늘’이, 바로 ‘나의 구원의 날’임을 기억하며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야겠습니다.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9)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 강수원 베드로 신부

 

 

 

 

 

?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