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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경 없는 의사회’ 활동가들의 인터뷰를 읽었습니다. 전쟁, 기아, 질병, 자연재해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세계 곳곳에서 긴급구호 활동을 펼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이었습니다. “환자가 있는 곳으로 간다.”라는 설립이념처럼 그 활동가들은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국경을 초월해서 일하고, 인종이나 종교, 정치적 성향에 관계없이 아픈 이들을 돕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경계선을 넘어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다가가려는 모습을 보니, 진정한 사랑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이 아닌가 싶더군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누가 자신의 이웃이냐는 율법 교사의 질문에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이 이야기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의로운 유다인을 자처하던 사제와 레위인 그리고 멸시받던 사마리아인. 전자는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을 멀찍이 지나쳐 가버리는데 후자는 쓰러진 이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고통을 떠맡습니다. 이방인 혼혈이라고 무시당하던 사마리아인이 다친 유다인의 이웃이 되어준 것이지요. 이러한 역설적인 모습을 통해 예수님은 현실적인 장벽을 넘어 이웃 사랑을 실천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사실, 예수님 시대의 사회에서 이웃 사랑은 일반적으로 같은 핏줄이나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 사이의 관계에 국한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의 비유는 사랑해야 할 이웃에는 아무런 경계가 없음을 강조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나, 자비를 베푸는 이는 누구나 ‘이웃’이라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이 점을 분명히 하시며 이웃에 대한 편협한 이해를 바로잡고,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사랑에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물론 나와 관계없어 보이는 사람에게 열린 사랑으로 다가서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가까운 이들끼리 서로 도우며 화목하게 지내는 삶에 그냥 만족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제1독서의 말씀처럼 사랑의 계명은 우리 가까이에 있고 우리 마음에 있어서 언제 어디서나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응답이겠지요. 날마다 우리는 ‘삶의 길가’에 쓰러진 이를 지나쳐 가는 무심한 행인이 될지, 아니면 착한 사마리아인이 될지 선택해야 합니다.

 

끼리끼리만 위하는 닫힌 사랑은 ‘무관심의 세계화’를 가속화하지만, 자기 울타리를 넘어서 더 많은 이들을 품는 열린 사랑은 ‘국경 없는 이웃’으로 가득한 열린 세상을 꽃피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누구의 이웃이 되어주겠습니까? 우리에게는 또 다른 이웃을 안아줄 수 있는 두 팔이 있음을 잊지 맙시다.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 송영민 아우구스티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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