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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51) 오늘 복음의 말씀은 알아듣기 힘듭니다. 평화가 아니라 분열이라니요. 평화의 주님 아니셨습니까? 가는 곳마다 평화를 빌어주라 하셨고(루카 10,5),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하셨던 첫 말씀도평화가 너희와 함께”(루카 24,36)라는 인사가 아니었습니까?

 

주님은 평화의 주님이 맞습니다. 하지만 평화도 평화 나름이지요. 사람들은 흔히 갈등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부릅니다. 남이야 어떻든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자신의 심신만 편하면 그것을 평화라고 여깁니다. 과연 그런 평화를, 주님께서 평화라고 하셨을까요?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

 

평화를 뜻하는 구약의 단어샬롬(שָׁלוֹם )’은 무사태평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샬롬은 하느님의 다스림이 이루어질 때 누릴 수 있는 완전한 평화입니다. 평화를 의미하는 신약의 단어에이레네’(ερνη )도 마찬가지 입니다. 에이레네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소극적인 상태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가 적극적으로 실현된 상태를 뜻합니다. 그런 하느님의 평화는 그저 오지 않습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평화를 위해 결단하고 헌신할 때, 하느님의 평화는 옵니다.

 

결단하고 헌신하는 이의 삶은 고됩니다. 모두가 시류에 휩쓸려갈 때도 결단하는 이는 시류를 거슬러 꿋꿋이 견뎌냅니다. 모두가 가만히 있을 때, 헌신하는 이는 분연히 떨치고 일어납니다. 휩쓸려가는 사람과 꿋꿋이 견디는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깁니다. 가만히 있는 사람과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는 사람 사이에 분열이 생깁니다.

 

분열이 없으면 좋겠지만, 분열을 피하려 함께 휩쓸려갈 수는 없지요.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안주할 수는 없습니다. 참 평화는 거짓 평화의 위선을 드러냅니다. ‘평화가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는 주님의 말씀은 거짓 평화에 안주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참 평화를 위해 결단하고 헌신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은참 평화의 주님이십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 허찬욱 도미니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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