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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오늘 듣는 루카 복음의 말씀은 흔히 ‘진복팔단(眞福八端)’이라고 일컫는 마태오 복음의 말씀(마태 5,3-12)과 병행하는 대목인데, ‘행복과 불행에 관한 선언’이 함께 나열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사실 행복(幸福)은 인간이 삶 안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인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그 대답은 사람마다 상이할 것입니다. 어느 누구에게서든 주관적인 기준에 따라 ‘행복이라는 가치’를 설명하는 대답을 들을 텐데, 그럼에도 사람들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기본적 가치도 있습니다. 평화, 사랑, 윤택한 삶, 기회, 자유 등이 먼저 생각나네요.

그러면 우리 신앙인들도 저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가짐으로써 더 행복해지고자 할 것인데, 과연 우리 신앙인들의 행복에 있어 기본적이고 공통적인 가치는 무엇일까요? 또 믿지 않는 이들이 말하는 행복과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의 말씀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원한 것’입니다. 영원‘永遠’은 한계도 없고 변질되지도 않는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할 수 있는 행복’, 복음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늘에서 받을 상”(루카 6,23)을 추구하는 것이 신앙인의 행복관념에서 발견하는 가장 큰 차이입니다.

  복음에서 말하는 행복은 ‘가난’, ‘굶주림’, ‘울음’(슬픔), ‘모략과 중상’(억울함과 시련) 등이라고 잘못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또한 나중에 얻게 될 보상이나 반전이 행복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지금 불행하다 느끼게 하는 것들 또한 영원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어떤 불행이나 고통 속에서 진정한 행복에 가까운 상태로 더 나아질 것을 믿고 또 알기 때문에 그 어려움이나 고통은 불행이 아닌 행복한 괴로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부유함, 배부름, 웃음(기쁨) 등도 영원하지 않기에 언젠가는 잃어버릴 수 있다는 긴장과 조바심 속에 영위하는 가치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변치 않으시듯 영원할 수 있는 것, 잃어버리지 않을까 노파심에 사로잡혀 살지 않고도 누릴 수 있는 것, 바로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신앙인이 추구하는 행복관념에 있어 ‘영원한 것’이 주는 근본적 차이입니다.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이 ‘영원히 썩어 없어지지 않을 생명’이기에 우리가 부활을 기뻐하듯, 그렇게 우리가 일상 안에서 추구하고 간직하는 행복도 ‘영원한 것’, ‘영원할 수 있는 것’들로 더 많이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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