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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오늘은 예로니모 성인의 기념일입니다. 예로니모 성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신,구약 성경을 모두 라틴어로 번역한 ‘불가타(Vulgata) 성경’을 완간(完刊)해낸 것이었습니다. 본래 구약성경은 2/3 가량은 히브리어로 쓰여졌으며, 비교적 후대에 쓰여진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전부는 그리스어로 쓰여졌습니다. 예수님 시대 이후 지중해(地中海)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은 고대 로마제국이 장악했으나, 여전히 궁중언어나 사교언어, 학술언어 등은 그리스어가 우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어를 모르는 체 당시 보편적 생활언어라고 할 수 있던 라틴어만을 사용하는 이들은 성경을 읽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우리 말로 번역된 성경을 읽기 때문에 그나마 더 쉽게 성경을 가까이 할 수 있듯이, 예로니모 성인의 이 성경번역 작업은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예로니모 성인이 젊은 시절부터 성경번역에 애착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인은 수도생활, 특히 사막등지에 숨어서 혼자 수덕(修德)생활을 하는 은수자의 삶을 지향했습니다. 그러다가 다마소 1세 교황의 비서로 발탁되어 일하면서, 교황의 지시에 따라 성경번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저 편하게 왕궁의 서재에 앉아서 책과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로 쓰여진 필사본(筆寫本) - 당시에는 인쇄술이 없었으니 성경 또한 모두 손으로 베껴 쓴 것 - 들을 찾고 또 대조하기 위해 수 차례나 예루살렘에 머무르며 고증(考證)하고 또 연구한 결과물을 가지고 로마까지 돌아와 연구를 이어가는 고단한 과정을 반복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인께서 성경의 번역을 완수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마다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의 말씀을 빌자면,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 9,62)는 말씀을 지키고자 함이었을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어느 정도 일리있는 저마다의 이유를 말하는 이들에게 반복적으로 ‘하느님 나라가 가장 우선한다’는 사실을 가르치십니다. 예로니모 성인도 한 사제로서, “영혼들의 구원”(Sanare Animarum)이라는 가장 큰 목표를 위해 갖은 고생과 어려움,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 열정과 사랑을 보였고, 그것이 더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읽고 듣고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이끄는 지름길, ‘성경의 번역’이라는 웅대한 작업을 완성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니었나 합니다.

 

  지금 우리 집에 모셔져 있고 ,우리 손에 들려있는 성경책이 그저 쉽게 찍어내는 인쇄물이 아니라 이렇게 우리를 포함한 누군가를 하느님께로 인도하기 위한 수고와 헌신이 담긴 결과물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며, 그 사랑에 부끄럽지 않은 이로서 동시에 누군가의 구원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을 가장 우선시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 기념하는 예로니모 성인의 삶에서 한 수 배울 수 있는 하루를 보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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