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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우리는 어제 복음을 통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에 관한 복음을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도 그와 맥락이 비슷합니다. 도둑이 들어올지를 집주인이 알고 있다면 당연히 준비하고 기다렸다가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비유로 주인이 자신의 집을 관리인에게 맡기고 떠났을 때 어떤 사람이 충성스럽고 슬기로운 관리자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주인이 돌아올때까지 자기 책임을 다하고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은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어서 주인이 그에게 모든 재산을 맡길 것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속으로 주인이 더디 오려니 하고 남녀 종들을 때리고, 먹고 마시고 술에 취해서 산다면 결국 충성스럽지 못한 종이어서 벌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았고, 하느님을 우리의 주님이며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주인이신 하느님의 뜻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받을 상도 많지만 한편으로그 책임도 큽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이 사랑하고 많이 용서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자기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지만, 주인의 뜻을 몰랐다면 매맞을 만한 짓을 하였어도 덜 맞을 것이라고 합니다. 믿지 않는 자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용서해야한다고 하니 부담스럽죠.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죽을 때에 세례받고 죽는 것이 훨씬 편하고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주인의 뜻을 알고 사랑하고 용서했다면 더 많은 상을 받을 것이지만, 주인의 뜻을 모르고 사랑하고 용서했다면 그것은 단지 인간적인 사랑과 용서이므로 덜 큰 상을 받을 것이라 이야기가 됩니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봅시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우리의 영혼은 하얀 도화지처럼 깨끗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랑이라는 그림을 그려나갑니다. 혹시 잘못을 저지르거나 해서 도화지가 지저분해졌을 때는 고해성사를 통해 그 얼룩을 지우고 새 그림을 그려나갑니다.

  처음부터 무슨 그림을 그려야할지 몰라서 늘 다른 그림과 낙서만을 하다가 죽기 직전에 세례를 받고 그동안 그렸던 것을 모두 깨끗하게 지웠다면 도화지는 깨끗할 뿐 사랑이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물론 믿지 않았을 때 사랑한 모습은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남아 있겠지만, 인간적인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에 비해 작고 초라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은 그림을 그려나가도록 합시다.

화나고 짜증나고 눈물이 나도록 억울한 일 앞에서 하느님께 의지하고 평화로울 수 있는 모습, 한순간만 눈감고 악행을 저지르면 떵떵거리며 살 수 있지만 정직과 가난함을 택하며 바른 양심을 잃지 않는 모습, 죄를 지었지만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믿고 고해소에서 눈물 흘려 회개하고 통회하는 모습, 나도 가진 것 없지만 이웃과 콩 한쪽도 나누며 웃을 수 있는 모습, 비록 하루가 힘겹게 느껴지더라도 하루의 끝에는 내가 의미있게 살아가도록 보살펴주시는 아버지께 두손을 모으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모습 등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보여드릴 때 기뻐하실 그림을 그려가도록 합시다.

 

  제가 몇 달간 자리를 비웠다 제자리로 돌아오니, 많은 교우들께서 반겨주십니다. 환대에 감사하기도 하고 신부가 자리를 지킬 때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차차 해나갈 생각을 하니 함께 해 나갈 일도 참 많은 것 같아 부담감도 가집니다. 그래도 집 밖에 나가서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집에 돌아와서 바쁘고 피곤한 것이 훨씬 좋은 것 같습니다. 붓이나 연필을 들고 아무 그림도 못 그리는 것보다는, 숙제처럼 그려내야 할 그림이 많더라도 혹은 그림솜씨가 시원찮다 하더라도 이것이 더 큰 행복이라 여기며 요 며칠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도 제 만족보다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기 좋아하실 그림을 그려보도록 해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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