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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성탄절입니다. 분명 기쁜 날입니다. 그 ‘기쁨’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방식을 생각해 보자면, 우리가 바깥에서 경험할 수 있는 성탄의 모습은 풍요로움을 소비하거나 나눔, 선물, 그리고 서로 감사와 아쉬움의 인사를 나누는 연말의 송년분위기 등이 일반적입니다.

 

  아시다시피 성탄(聖誕)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신 강생(降生)의 신비이기에, 곧 ‘낮아짐’이라는 방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쁨의 근본적 이유입니다. 특히나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한 긴장감이 다시금 높아지면서 한해를 온전히 코로나와 함께 보내게 된 올 한해에는 이 ‘낮아짐’, ‘낮춤’의 의미가 더 절실히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쁨이 흥겨움, 웃음, 풍성함, 즐거움 등으로도 드러날 수 있습니다만, 예수님의 탄생 장면에서부터 활동하시는 때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이 전하셨던 기쁨의 주된 정체 가운데 하나는 ‘위로(慰勞)’ - 고달픔을 따뜻이 달래고 풀어줌 - 가 아니었던가 합니다. 특히 위로가 필요한 이들은 스스로 고달픔을 달랠 능력이 없는 이들, 그래서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이었고, 예수님은 심지어 자기 집조차 구할 수 없어 마구간에서나 태어나게 됩니다. 탄생 순간부터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시는 ‘낮춤’으로 하느님의 위로를 전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전통적으로 교회는 이날 교황과 주교들이 지역교회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나 시설 혹은 가장 작은 공동체를 찾아 성탄절 밤을 보내는 관습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올 한해 동안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았던 위로를 각자 떠올려봅시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가운데서도 어느 순간 우리에게 위로와 위안이 되어주었던 사람들과 그들의 사랑, 노력 등을 기억해 봅시다. 세상 누구든 예수님께서 선사하시는 ‘하느님 나라’를 믿고 추구하는 이들에게 조건없는 기회를 주시고 필요한 은총을 주시고자 우리와 함께하러 오신 예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만으로도 위로를 얻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러한 위로의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이기를 소망하며 이 성탄을 기뻐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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