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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오늘 복음의 말씀입니다 :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루카 7,24)

 

  예수님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기 전, 이스라엘 민족이 열광하던 인물이 세례자 요한입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살았고, 따라서 많은 이들이 요한을 만나보고 싶어서 인적이 없는 광야에까지 애써 찾아옵니다.

  그런데 요한을 만나보고 싶어하는 각자의 속마음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서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은 마음, 요한이 하는 말을 직접 들어보고 싶은 생각 등 다양할 것입니다.

  그 모든 마음, 동기(動機)가 다를지라도 결국 요한을 직접 만나본 후에 그를 예언자 혹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알아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소득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광야에 나가는 사람들을 두고 예언자를 만나보고픈 바람직한 동기를 스스로 부여하기를 제시하십니다.

 

  처음 성당에 나오게 된 동기도 저마다 다르지 않습니까?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의 영향, 친구 때문에,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렸다 생각되어서 등 다양할 것입니다. 심지어 제 조부모님뻘이 되는 할아버지 신부님들께서는 ‘신부님이 되면 쌀밥과 김을 먹을 수 있나보다’라는 생각이 사제성소의 동기가 되기도 했답니다. 그 출발점이 무엇이든, 우리도 결국 얻어내어야 할 체험은 요한을 예언자로 알아보게 되는 것과 같이 하느님을 직접 만나는 체험이요, 하느님의 은총이 나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체험일 것입니다.

 

  어떤 체험이든 직접 겪어보고 깨달으려면 ‘체험의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미사나 기도 중에 하느님을 찾을 때, 다른 인간적 지향이나 마음 속의 개인적 생각을 넘어 이런 ‘신앙인으로서의 체험’에 이를 수 있기를 도모해야겠습니다. 광야에까지 애써 찾아가면서도 얻고자 하는 바가 ‘요한이 예언자’라는 본질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과 같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께 향하는 마음을 갖지 못하는 모습에 그치지 않도록 우리의 지향과 목표를 잘 세워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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