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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오늘 복음에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가 치유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말을 잘 못하는 이유는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듣는다는 것은 자기중심적일 수 없는 행위입니다. 이에 반해 무엇인가를 보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은 때로는 자기 위주의 행위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청각에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를 골똘히 들여다보거나, 하고 싶은 말이 많거나, 생각에 잠겨있을 때에는 곁에서 말을 하거나 무슨 큰 소리가 들려도 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듣는다는 행위, 더 나아가 알아듣는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우선권을 주거나 상대방에게 집중해야 제대로 이루어집니다. 상대방이 저런 말이나 행동을 왜 하는지, 무슨 뜻이 담겨있는지 헤아리려는 노력이 없다면 제대로 듣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쳐주시면서 여러 가지 구분동작을 선보이시는데, 그 가운데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시는모습이 나옵니다. 어쩌면 이 한 사람을 고쳐주시는 것이 새로운 행위가 아니라, 이미 많은 이들에게 하신 일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가르치시는 말씀을 듣는다고 하면서도 제대로 알아들으려 하지 않는 소위 몸성한 이들에게도 지금껏 귀를 열어주고자 노력해오셨고, 이 과정이 귀먹은 이를 고쳐주시는 기적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꼬투리를 잡으려고 들거나 혹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거나, 심지어 자신의 판단과 결론에 이용하고픈 악한 마음으로 누군가의 말을 듣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나치게 편향되기만 한 이들의 모습에서도 듣지 못하는 답답함을 엿보게 되고, 참다 못해 다투면서 속내를 털어내보아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배우자나 친구, 동료도 찾아볼 수 있지요.

 

  저도 십여 년 전에 머물렀던 기억이 있는 이곳 북경에 다시 오면서, 마음속으로 많이 다짐했던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교우들의 생각과 속사정을 듣는 것에 인색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생활해본 경험이 있기에 제 나름의 결론에 혼자 먼저 도달해 있다면, 지금 공동체의 사정이 어떠한지 교우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여건과 마음은 어떠한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작금의 사태로 인해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가 미루어짐은 좀 아쉽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중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보고 또 듣습니다만, 진정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자 귀가 열려있는 사람인가 하는 물음을 오늘 다시 던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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