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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계명을 주십니다. ‘계명’(誡命)은 마땅히 지켜야 할 것으로 주어진 명령(命令)입니다. 그리고 그 명령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사랑하라는 명령에 있어 달린 대전제, 혹은 대원칙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모습을 어떠한지를 잠시 들여다봅시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품어주십니다. 사랑에는 ‘자비심’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라, 누군가의 잘못이나 그로 인한 아픔과 어려움을 함께 견뎌주고 회개와 용서의 기회를 얻기 위해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심판이나 단죄, 응징하기에 신중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로부터 크게 상처받았다 느끼면 불같이 화를 내거나 ‘역공(逆攻) 태세’를 취할 수 있는데, 이로써 이미 상대방을 측은하게 여기거나 신중하게 문제점에 대처할 기회를 저버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음으로, 대가(代價)를 바라지 않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 치유의 기적을 행하실 때 어떤 대가를 바라신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많은 교우들이 선행과 자선, 봉사를 실천하면서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의 자존심이 상한다거나 혹은 내 진심을 알아주는 정도라도 살짝 기대하는 마음이 충족되지 않을 때 실망하거나 아쉬워하기도 하고, 이런 작은 기대감마저도 ‘대가를 바라는 것’이 될 수 있음을 너무 늦게 알게 되기도 합니다.

 

  셋째, 고통과 위험을 감수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나 십자가에 매달려 계실 때의 사랑을 떠올려보면 됩니다. 주목할 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달게 받으신 것은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 수고하는 것은 기꺼이 할 수 있으나, 그것이 ‘타인이나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수고’가 아닌 ‘내가 원하는 수고’에 그칠 수 있다면 이는 고통과 위험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외에도 예수님의 사랑을 닮으려면 더 많은 점들을 이야기할 수 있겠으나, 특히 지금 우리에게 있어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조급함을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조급함을 ‘천천히 해 나가는 것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일정 수준 이상의 속도로 살아가야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일상화된 현대인의 삶 속에서, 우리는 이 불안함과 걱정의 산물(産物)인 조급함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할 때도 많고, 그로 인해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 살아가지 못하고 놓치는 것들 또한 적지 않다고 보여집니다. 특히 코로나로 인하여 생겨난 여러 악영향 속에서 이런 조급함을 보이는 때가 더 많이진 듯도 합니다.

  개인적인 삶이나 미래를 위한 계획을 놓고 볼 때에 가지게 되는 조급한 마음은 말할 것도 없겠습니다만, 우리 공동체를 놓고 볼 때에 미사봉헌이 어려운 현실이나 이로부터 비롯되는 여러 가지 아쉬움과 불편함 속에서 엿보이는 조급한 마음과 생각들이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초조함과 불안함, 조급함에 대한 반작용으로 너무 느긋해지거나 무관심해진 것도 있겠지요.

  타인이나 공동체를 걱정하는 마음이 있기에 불안함도 느끼고 때로는 조급한 마음도 생기겠죠. 하지만 그 조급함이 어떤 상황을 빌어서 자신의 불안감을 표출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나의 이런 조급함, ‘더 빨리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 속에 타인이나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랑이 깃들어있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빨리 달릴수록 시야가 좁아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행하신 사랑의 모범을 닮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우리는 이런 조급함으로 인해 잃어버리거나 후회할 수 있는 것들을 되찾고 누리며,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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