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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성경에 나오는 네 복음서 가운데서도 요한 복음을 읽다 보면 심오한 듯 하면서도 뭔가 어렵고 뜬구름 잡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요. 사실 요한 복음은 초대교회 시기에 등장한 영지주의(靈智主義) - 예수님을 비롯하여 모든 인간에게 있어 하느님의 영(靈)이 인간의 육신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차등이 발생하고, 악(惡)도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상으로, 영지(靈智)를 받은 이들이 구원에 있어 우월한 지위를 누린다는 생각으로 인해 ‘예수는 단지 영지를 받은 한 인간’이라고 말하여 ‘하느님이시자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며 ‘세상 모든 이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의지를 거부하는 이단 - 를 반박하는 차원에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가 익히 들어와서 뭔가 익숙하고 어느 정도 수긍은 하지만 마음속에 그 뜻이 잘 새겨지고 이해가 되기까지는 어려운 느낌을 줄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이와 같은 투의 말씀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3,31) 혹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3,34) 와 같은 말씀입니다. 

 

  어린 자녀들이나 후배들, 초보자들을 보면서 서로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면 그저 웃음이 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네들끼리 그렇게 살아가며 구원에 가까워지기도 또 멀어지기도 하는 모습을 ‘위에 계시는 분’께서 보신다면 이런 느낌일까요? 

  그런데 우리도 시야가 가로막힌 사무실, 집, 교실, 도심과 같은 곳에서 살 때는 눈앞의 것에만 골몰하지만 이따금 그곳을 벗어나 시야가 탁 트인 곳에서 삶의 자리들을 바라본다면 그 느낌이나 생각도 달라지고, 생각의 깊이와 넓이도 더해질 수 있습니다.

 

  고대 중국의 사상가 맹자(孟子)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이야기했습니다. 하늘과 땅에 가득찬 ‘큰 기운’이라 풀이하죠. 그런 기운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내가 그런 큰 기운과 기상을 간직한 사람이 되는 것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면서 갖은 삶의 경험에서 하느님을 의식하고 찾는 모습이 때로는 하느님조차도 우리끼리의 모습처럼 아웅다웅하며 옹졸한 분으로 만들어버리는 듯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편협함이 하느님의 편협함과 다를 바 없고, 우리의 인색함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속좁은 수준으로 폄하하게 만듭니다. 우리에게도 ‘위에 계시는 하느님’의 기상과 ‘큰 뜻’을 우리의 가슴과 삶 속에 간직하고 품을 수 있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모든 것 위에 계시는 하느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우리들도 ‘모든 것 위에 있는’ 초월(超越), 초탈(超脫)한 자의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봐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누군가의 잘못이나 실수, 시행착오 앞에서 그저 상대방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이미 겪어본 사람이나 위에서 전체를 훤히 내려다보는 사람의 넓은 시각, 넓은 마음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우리의 모습과 습성을 통하여, “한량없는”(3,34) 하느님의 자애로우심을 스스로도 이해하고 타인에게도 증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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