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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누군가 죄를 짓거나 큰 고통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니라서 다행이다’라고 안도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나는 큰 과오 없이 내 몫을 다했는데, 동료나 타인의 실수 혹은 잘못으로 결과가 나빠졌다면, 과연 그 모든 때에 ‘나는 아무 잘못과 책임이 없다’고 단정지어 말할 수 있습니까?

 

  오늘 복음은 우리 신앙인들이 하느님께로부터 구원받기 위해 갖추어야 할 미덕인 ‘의로움’의 문제에 대해 알려줍니다. 그런데 사실 내가 의로운 사람인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위의 예시에서처럼 때로는 ‘스스로 의롭다고 말하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무엇이 의로운 것인지를 잘 식별하고, 그 의로움을 간직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를 위해서 ‘의로운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기에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바를 알고 싶어 하고, 또 아는 대로 지키려고도 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추가로 의문을 가져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 그렇게만 다 하면 의로운 것입니까? 즉 계명을 다 지키면 의로운 것입니까?

 

  사실 우리는 하느님의 의로움을 모두 다 헤아리고 있다고 자신할 수 없습니다. 계명의 뜻을 아는 만큼 지켜내지만 완전히 깨닫지 못할 때가 있죠. 내가 생각이 미치는 만큼은 하느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실 것을 지켜내었다고 해서 정말 할 수 있는 만큼 그 계명의 뜻을 다 지켰다고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계명의 본 뜻을 지킬 수 있는 상황이라고 헤아리지 못하거나 생각조차 못해 본 경우도 있을 테니까요.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 보시기에 의롭지 못한 것도 의인의 도리를 할 수 있는 만큼 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의인이라 인정받을 수 있다 - 적어도 죄인은 아니다 - 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부족한 지혜와 경험, 통찰과 믿음을 근거로 스스로 의롭다고 단정짓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는 의로운 사람이 되고자 할 때에 이런 오만함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잘 살아왔던가를 돌아볼 수 있어야겠습니다.

  내가 대수롭잖게 여기는 것이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의로움을 위해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일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목을 매고 애지중지하는 것이 오히려 하느님께는 의로움을 위해 덜 중요한 것일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 복음은 우리가 죄인으로 단죄받지 않았다고 느끼는 이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느님의 기다림 때문임을 이야기합니다 :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루카 13,7-9)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아직 내가 죄인으로 단죄받았고, 구원받을 수 없다고 절망하지 않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기다리고 품어주시는 자비하심으로 우리를 돌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하느님의 자비하심 덕택인 것을 자신의 공로(功勞) 때문인 줄 착각하던 때는 없었는지를 잘 돌아보고, 우리는 여전히 하느님께서 입혀주신 ‘자비의 옷’을 입고 살아가는 사람임을 잊지 않도록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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