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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누군가가 자기를 죽이려 한다면, 두려움에 떨면서도 살려달라고 하는 것이 보통 일일 것입니다. 자기가 난처한 상황, 고통스러운 상황에 있는데 그것을 빈정거리는 모습을 보고서 기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없던 화가 치밀어 오를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 높이 달리셨을 때에는 참 특이한 일이 벌어집니다. 사람들은 죄없는 한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아 신음하고 피흘리게 만들면서도, “네가 유다인의 왕이라면 자신이나 살려보아라”(루가 24,37)라고 온갖 욕설과 조롱을 퍼붓습니다. 그러나 그런 비웃음과 모욕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욕설과 저주로 되갚음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루가 23,39)라고 하시며 그들을 용서하시고, 당신을 해치려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라는 인물도 죽음 앞에서는 억울함과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온갖 욕설과 망언을 내뱉으리라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껏 스스로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하며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별종(別種)’ 행세를 했으니, 어디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면서도 그럴 수 있는지 두고 보자는 식의 생각이 이 비아냥거림에 묻어나는 듯 합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예수님은 자기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뭔가 달랐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요한 8,28-29)

  치욕과 고통만이 존재할 것 같은 십자가를 예수님은 사랑의 표시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끝까지 사랑하신 덕택에, 사람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끝없이 사랑하고자 노력하면서도 쉽게 지치고 넘어집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 고통 중에도 사랑을 한결같이 보여주심으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깨닫게 되었듯이, 우리도 힘들고 어렵다고 사랑하기를 주저하고 포기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러했듯이, 우리 각자도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 보여야 할 사랑의 징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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