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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오늘 복음말씀에 나오는 '자라나는 씨앗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는 하느님 나라의 특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농사꾼은 씨앗이 저절로 자라나는데 있어 아무런 결정적 역할도 하지 못하지만, 수확할 때가 되면 그 소출을 거두고 혜택을 누리게 됩니다. 생명을 잉태하게 하거나 스스로 자라나게 하는데에 필요한 것은 이미 정해져 있고 주어져 있으며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씨앗 속의 생명이 생장하듯, 우리의 삶도 일정 부분은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방법과 능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눈으로 보아 그 변화를 알 수 있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힘을 보탭니다. 그래서 때에 맞게 할 일을 찾아서 하게 됩니다. 이삭이 패면 거름을 주고, 줄기가 올라오면 김을 매어주고, 낟알이 영글면 수확과 탈곡을 합니다. 이렇게 보조적인 역할을 할 뿐이지만, 그 모든 것을 사람이 먹고 누릴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만들어두신 섭리, 하느님 나라는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가 별도로 눈여겨 보았으면 하는 한 가지 지점은 '세상을 바꿀 것 같은 힘과 주도권이 없다 할지라도' 하느님의 섭리에 협력하는 우리의 보조적인 역할이 결코 의미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삭이 패고, 줄기가 오르고, 가지를 뻗고, 낟알이 영그는 과정을 무시하거나 협조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물론 그 선택에 따라서 수확의 결실을 얻을 권리도 함께 잃을 수 있겠지만요. 그럼에도 우리에게 주어질 수확의 풍성함과 혜택이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짐을 인정하고 기꺼이 협조하는 것이 가치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하느님께로부터 시작되고 만들어진다는 것을 인정하는 신앙의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나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한다는 것이 이기적인 이유는 스스로를 위한 이익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모든 변화와 하느님의 섭리 가운데에서 하느님을 찾으려 하지 않고 나 자신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드러나는 현상으로 표현하자면 내 중심적으로 판단하고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결국 하느님의 주도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함에서 오는 행위입니다. 

 

  나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볼 때에, 하느님께서 내게 주실 것을 기다리며 노력하는 것 또한 신앙적인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나와 직접 관계되는 것만이 아니라 내 주변에 더불어 있는 이웃들까지도 함께 볼 줄 알 때에 우리는 '하느님께서 나를 위하여 마련해주신 것'이 또한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이 될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또한 '지금의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훗날의 나'를 포함한 '우리'를 위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 나를 위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위한’ 선택을 할 줄 알게 되고, 그 판단 속에는 다른 누군가를 위한 가치가 더불어 존재하게 됩니다.

 

  하느님을 인정하고 무시하지 않기 위한 판단, 곧 주변을 더욱 넓게 볼 줄 알고 ‘공동체’를 위한 판단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를 선사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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