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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오늘은 성령강림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약속하신대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써, 제자들 곧 교회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사명을 수행하는 데에 필요한 권한과 능력을 나누어받게 된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 공동체도 이러한 교회의 전통에 따라 9일간 성령의 은혜를 청하며 기도하자고 권고하고 또 기도해 왔습니다. 이제 오늘부터는 과연 성령께서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어주시는지를 확인하고 체험하며 살아가는 시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이미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는 성령의 모든 은사(Charisma)는 공동체를 위한 것입니다. 사람이 서로의 죄로 인해 갈라지고 반목하고 불신함으로 깨어지는 일치와 조화를 회복하도록 하는 은사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주시는 능력은 ‘죄를 용서하는 우리의 노력이 실제로 효과가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사실 말로써나 생각으로 우리가 누구의 죄를 용서했다 하더라도, 실제로 그가 용서받거나 서로 화해한다는 결과가 즉각적으로 실현된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원수가 될 수도 있는 어떤 사람이 성령의 힘을 통해 내 이웃이요 친구가 될 수 있으며, 서로 갈라져 끼리끼리만 어울리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를 형제, 자매라고 느낄 수 있게 변화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구원에 있어 서로의 운명을 같이할 공동체를 이루는 데에 필요한 능력을 각자에게 알맞게 내려주시는 것이 바로 성령의 은사입니다.

 

  이 은사는 우리 각자에게, 저마다 다르게 주어집니다. 마치 한 두 개의 조각으로는 전체의 그림을 완성할 수 없고 각자의 모양과 색상도 다르지만 그 조각들을 맞추어 보면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볼 수 있게 되는 퍼즐처럼 말입니다.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할 때의 우리의 모습만 보아도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노래가 좋아서 성가대에 올라가 더운 날에도 긴 천조각을 덮어쓰고는 웃으면서 노래합니다. 이 노래가 없다면 우리는 미사전례의 거룩함을 잘 느낄 수 있을까요? 또 누군가는 말씀을 들려주기 위해서 연습하고 준비합니다. 그렇게 준비된 사람들이 아니라면, 우리가 고요히 하느님의 말씀을 귀여겨 들을 수 있을까요?

  어느 누군가는 매 주일마다 성당 뒤편이나 구석에 서서 미사에 참례합니다. 그들이 아니라면 영성체하기 전에 필요한 고해성사를 받고, 오늘의 전례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이해하며 미사에 참례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그 날 전례의 내용을 다른 사람들이 화면을 통해 볼 수 있도록 서둘러 준비합니다. 어떤 이들은 주말이 다가오면 별로 친하지도 않은 버스 기사 아저씨와 연락을 취해야 하구요.

  그리고 누가 알아주든 상관없이 하느님을 찾아 진심으로 기도하며 성당에 앉아있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없으면 성가대는 자기들끼리 신나서 노래부르는 쌩쇼가 될 것이고, 듣는 이 없는 말씀을 읽는 이들은 맥이 빠질 것이며, 몇 시간을 서서 고생하는 이들은 그 보람을 찾기 힘들 것입니다.

 

  이 모든 이의 역할이 한데 모여서 한 번의 미사를 온전히 봉헌할 수 있는 것처럼 그 모든 사람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미사는 우리가 가진 재능과 정성과 시간과 공동체의 화목함 등 이 모든 것을 봉헌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미사를 정성되이 참례하고자 하느님을 찾는 순수한 마음이 우리 모두가 가지는 크고도 유일한 공감대입니다. 이런 유기적인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도록 이끄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기보다 나에게 주어진 역할,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무엇을 통해 공동체의 일치에 이바지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자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령의 은총을 삶 안에서 확인하는 방법입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줄 알면서도 고유한 내 모습 안에서 내 능력껏 공동체의 일치와 구원을 위해 성령께로부터 받은 은사를 내어놓고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다짐하며 부활시기의 끝자락을 잘 마무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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