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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제가 근래 몇 년 사이에는 운동을 꾸준히 하지 못했습니다만, 십여 년 전 즈음에 테니스를 잠시 배웠더랬습니다. 우리 교우들 가운데 배트민턴을 즐기시는 분들도 계시는 것으로 압니다만, 테니스나 배드민턴 같은 경기에서는 한 팀에서 네트 가까이에 선 사람은 뒤에 서 있는 자신의 파트너를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 결과 앞에 대치하고 있는 상대편의 움직임에 집중하게 되고 이 집중력이 상대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때가 많습니다. 반대로 내 파트너를 믿지 못하면 자기가 해결하려고 움직임이 커지거나 서두르게 되어, 결과가 좋지 않은 때도 많습니다.

 

  우리의 일상 가운데에는 이렇듯 '보지 않고 믿는 것'에 익숙한 경우가 적잖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아내 혹은 어머니가 만들어 준 음식을 먹는다면 나쁜 것이 있지는 않나 의심하면서 먹는 이가 없을 것입니다. 맛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위생이나 안전성에 대해서는 믿고 먹습니다. 검증된 식당에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음식이 맛있는지, 깔끔한지, 먹을 만한지를 묻지 않고 그냥 주문하죠. 그런데 위생환경도 좋지 않고 뭔가 미덥잖은 인상을 주는 식당에 간다면 아무 음식이나 시키지 못합니다. 주문해서 받은 음식을 괜히 뒤적거릴 수도 있습니다. 못 미더우니 말입니다. 믿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 행동하고 살아가는 방식이 확연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토마스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정확하게 나오지 않습니다. 동료들에 대한 불신일 수도 있고, 부활이라는 사건에 대한 막연한 불신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을 때에도 그는 바로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직접 보고서 비로소 믿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토마스는 예수님께 믿는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신앙고백을 합니다. 이 신앙고백은 예수님께서 정말 살아나셨다는 '객관적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진정 하느님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실 주님이심을 고백했다는 뜻입니다. 구약시대로부터 예언되었고, 예수님 스스로도 생전부터 예고하셨던 그 모든 가르침이 참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믿음을 가졌을 때에 하느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시는지 그 참된 뜻을 알아듣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믿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의심의 눈초리로 보면 뭔가 찜찜한 것, 수상한 것, 내가 용납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옵니다. 반대로 누군가를 믿으면 그저 겉으로 보이는 과정이나 결과 뿐 아니라, 그 상황에 임하는 타인의 심경이나 감정변화 등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신뢰하고 그렇지 않음에 따라서도 볼 수 있는 것, 알 수 있는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기쁨의 시기, 축제의 시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다지 기쁘지 않다면, 먼저 부족한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토마스가 예수님을 믿어서 하느님의 구원하시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듯이, 우리도 믿음을 가져야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지 미리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느끼며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기울이신 정성과 사랑을 깨닫도록 인도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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