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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제가 신학생이던 시절의 일과시간표를 보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 아침에 일어나면 기도와 미사참례 후에 아침식사를 합니다. 생활공간 청소와 개인정비에 이어서 4시간 가량 오전수업을 듣고, 낮기도와 점심식사, 운동과 공동작업을 한 후 오후수업(수업이 없을 때에는 자율학습)을 합니다. 다시 성체조배와 저녁기도 후에 식사를 하고, 산책 겸 묵주기도를 바친 후에 저녁에는 침묵을 지키며 공부하는 시간을 보냅니다.

  개인적으로 공부해야 할 일과시간이 많은데 저는 매우 산만한 사람이어서인지 한 자리에 꾸준히 앉아서 공부하는 것에 익숙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볼 때에는 제 책상은 항상 비어있는 곳이었고, 그래서 동기생들 사이에서 저는 ‘탈렌트를 쓰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제 학습습관은 바뀌지 않았음에도 이런 인식은 점차 사라졌습니다. 어려운 과목이나 공부할 분량이 많은 과목은 학급 내에서 몇몇이 분담하여 요점정리 같은 것을 하여 동기생들과 공유했는데 저도 한 몫을 맡아서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에 나오는 ‘탈렌트’를 재능(才能)이라는 말로 알아듣는 데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의 말씀은 ‘몇 탈렌트를 받았으며 얼마를 벌어들였는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 탈렌트를 받아서 어떻게 관리하였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탈렌트’로 비유되는 것은 단순히 어떤 능력이나 재주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제가 신학생이던 시절에는 학업이 중요했기에 ‘학습능력’이 중요한 탈렌트로 보입니다. 하지만 신부가 되고 보면 그것이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을 잘 기억하는 능력,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 등이 필요한 탈렌트로 보이기도 합니다. 낯선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는 친화력 같은 것도 도움이 됩니다.

  공동체에서 교우들과 함께 살아가는 신부로서 지금 저에게는 어떤 탈렌트가 필요할까 생각해봅니다. 능력이 뛰어나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꾸준히 ‘관심을 갖고 대하는 것’, ‘필요로 하는 이에게 적절하게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자 탈렌트가 아닌가 싶습니다.  

 

  복음의 비유에서 주인은 ‘악하고 게으른 종’에게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마태 25,26-27)고 말합니다.

  얼마를 받았으며 얼마를 벌어들였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돈을 빌려주어 자연발생적으로 이자를 얻는 것 만큼의 수고도 하지 않을 만큼 이 종은 어떤 ‘생각조차, 고민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생각, 고민, 관심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우리가 먼저 선용(善用)해야 할 탈렌트가 아닌가를 많이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선용해야 할 것들, 우리가 이미 받았지만 탈렌트라고 여기지 않음으로 인해 무심해진 것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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