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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오늘의 복음은 우리 모두가 회개하여 구원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여러 가지 각도로 조명해 주고 있습니다. 결국 인간적인 논리, 합리성, 효율성 등을 초월한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지’가 우리에게 해당되는 것임을 말해 줍니다. 루카 15,11 이하의 ‘자비로우신 아버지의 비유’에서처럼 하느님께서 그렇게 자비로우신 분이라면 그것이 우리 모든 이를 마주하시는 하느님의 본성이요 마음이라는 것을 느끼고 인정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어제가 추석이었습니다. 명절이니만큼 고국이나 타지에 계신 부모님께 안부는 모두 전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전화로라도 인사를 드리는 것, 과연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까? 적어도 모든 사람이 같은 마음으로 전화를 드리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요즘 너무 힘들어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고 하여 전화를 드린다면 ‘내가 위로를 얻기 위한’ 행위가 되겠죠. 바꿔 말하면 ‘내가 필요성을 못 느낄’ 때는 어머니를 찾는 주기가 길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명절이니만큼 으레 전화를 드리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지만, 의무방어전 같은 느낌으로 안부를 전할 수도 있습니다. 명절이 가까우니 자식이 더 보고싶지 않을까 하여 어머니께 얼른 전화를 드려야겠다 싶은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내 안부를 궁금해하고 연락을 기다리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렇듯 그 관계를 이어가는 방식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머니께서 타국에 떨어져 살고 있는 자식들을 보고싶어 하신다는 사실이 우리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도 달라질 수 있겠죠.

  하느님께서 그토록 자비하신 모습으로 우리를 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그만한 편차가 있지 않을까요?

 

  이처럼 신앙인의 참된 회개는 내 심경의 변화가 있어서 보이는 행동이 아닙니다. 회개는 (식었다거나 잃었다고 표현할 만한) 사랑의 관계가 회복된다는 의미입니다. 

  성당에 미사참례하거나 고해성사, 판공성사를 해야 할 때에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을 예로 들어 봅니다 :

신자로서 미사참례의 의무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고해성사도 부담스럽지만 피룡한 때가 있다는 것도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고해성사를 해도 어차피 나는 다음부터 또 미사 빠질 때가 있을 것이고, 또 거짓말 할 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현실적으로는 틀린 생각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키지 못할 약속을 꼭 해야 한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은 것 같고, 나중에 진짜 약속을 잘 지킬 수 있을 그때가 되면 고해성사를 하고 미사참례를 열심히 하겠다며 미루어 둡니다. 

  이런 마음이 ‘내가 힘들 때나 필요할 때에’만 어머니를 찾는 모습과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어머니의 자식을 향한 그리움이 내 삶 속에서 부모님과 나의 연결고리로 이어지지 않고 종종 끊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이 언제나 내게 미치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 자비하심으로 우리와 함께계시는 하느님을 좀 더 의식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때에는 선택의 기준이 달라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좀 더 성숙한 신앙인, 좀 더 하느님과 친근한 자녀로 변화되어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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