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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최근 몇 달간 감염사태로 적잖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많은 이들의 죽음을 두고 우리는 막연한 슬픔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뉴스에서 나오는 사망자 관련 소식을 무덤덤히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어떤 이의 죽음을 두고는 애통(哀痛)해 합니다. 슬퍼하고 아파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랑이 아닌가 합니다 : ‘사랑하던 사람이기 때문에 느끼는 개인적 사랑도 있을 것이고, 뜻있는 이라고 인정하고 존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는 그가 추구했던 가치를 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아파합니다. 못다핀 꽃 같은 어린이나 젊은이의 죽음 앞에서는 생명후배, 자녀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아파할 것이고, 가엾은 이의 죽음을 두고는 내가 그들에 대한 연민을 지닌 사람이기에 아파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라자로의 죽음을 애통해하시어 눈물까지 흘리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성경의 어디에서도 좀처럼 잘 드러나지 않는 인간적인 슬픔, 이는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사랑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죽음으로 이별하는 것은 참 슬픈 일입니다. 영영 이별하는 것과 같고, 더 이상은 그 사람의 손길과 눈빛과 목소리를 느낄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목놓아 웁니다.

  하지만 죽음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기 이전까지의 삶이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을 말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도 있지만, 값진 인생과 고귀한 죽음은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죽고나면 모든 것이 소용없는 것이 되고,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변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몸소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써 죽음을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으로 옮겨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만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부활의 신앙,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위령감사송1)을 믿는 것입니다.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시는 기적을 통해 당신의 부활을 미리 보여주신 예수님께서는 그래서 오늘도 우리가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것, 지금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 또한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모든 시간을 통해서 이미 나는 하느님께 사랑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자로를 사랑하셔서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의 슬픔은 죽음이라는 문턱 앞에서 오늘을 열심히 살지 못하는 우리들 때문에 흘리시는 눈물이 될지도 모릅니다. 부활대축일을 앞두고 진정으로 회개하라는 목소리에 얼마나 충실하게 살아왔는지, 지난 사순시기를 보내온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며, 오늘을 기쁘게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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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el 2020.03.29 08:33
    우리는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것, 지금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 또한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모든 시간을 통해서 이미 나는 하느님께 사랑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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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가다 2020.03.29 09:01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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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미란 2020.03.29 09:32
    죽기 이전까지의 삶이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을 말해줄 것이기 때문이며, 우리를 사랑하셔서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의 슬픔은 오늘을 열심히 살지 못하는 우리들 때문에 흘리시는 눈물이 될지도 모릅니다...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아야겠습니다. 기쁘게 감사하게 살기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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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로 2020.03.29 14:27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라틴어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라는 말인데,
    삶을 바르게 사는 지표로 새기는 말이라고 합니다.
    오늘 신부님 말씀과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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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사람 2020.03.29 20:49
    사랑입니다. 바로 그 사랑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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