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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복음의 이야기 처음에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가리켜 “여인아”라고 부르십니다. 이는 자신과 직접 상관이 없는 누군가를 부르는 호칭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주님이심을 깨닫지 못했음에도 주님을 자기가 모시고 싶다는 마리아의 사랑고백이 있은 후에, 주님께서는 그녀에게 “마리아야”라고 부르십니다. 그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는 이를 다정하게 부르시듯이 말입니다.

  주님을 “제가 모셔가겠습니다”라고 할만큼 주님께 대한 마리아의 사랑고백이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뵈올 수 있도록 인도했음을 복음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독서 말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그저 유명했던 한 사람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고 여겼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분이 진정으로 구세주시라고 믿지 않기에 자신과는 별 관계없는 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진정으로 우리가 고대하던 구세주시라는 사도들의 증언을 들으면서, 스스로 느끼는 죄책감으로 인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라고 말하며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들의 죄책감이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변화되기 위해서도 그분을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고백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나와 깊은 관련이 있는 분으로 체험하고, 예수님의 부활이 곧 나의 부활로 연결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유대인들과 마리아가 보여준 것같이 부활하신 주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고백이 요청되는 것입니다.

 

  사실 많은 기도 중에 우리는 ‘주님’을 부릅니다. 이 단순한 호칭, 외침이 습관화되고 울림없는 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매순간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과 믿음의 고백’임을 떠올리며, 기도의 중요성과 그 힘을 믿게 됩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가 매순간 지켜나가야할 고백의 모습, 마리아의 고백과 유다인들의 고백을 다시한번 마음속에 그려봅니다.

“주님을 제가 모셔가겠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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