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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오늘 복음에서는 두 인물을 대비하여 보여줍니다. 부유하고 호화스럽게 살았던 부자와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았던 라자로입니다. 이 두 인물을 통해 죽음 이후의 세상이 현세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부자가 죽고나서 아브라함에게 간청하는 대목에서 한 가지 사실에 주목해 봅니다. 그가 형제들이라도 경고를 듣고서 고통스러운 징벌을 면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했을 때, 아브라함은 말합니다 :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즉 이미 주어진 가르침을 실천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부자도 모세와 예언자율법과 예언서의 내용을 통해 공동체 안에서 가난한 이들을 배려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걸맞는 것임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가르침을 실행하지 않았을 것이고요. 어쩌면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일 듯 한데, 새로운 가르침을 익히는 것보다 이미 주어진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 문명과 기술의 발달, 삶의 양상의 다변화 등으로 인해 새로운 현상들이 수없이 나타나고, 이를 설명해주거나 변화의 방향을 가늠하는 데에 도움이 될 새로운 이론들이 많이 쏟아져나옵니다. 우리는 이 새로운 것’, ‘미래지향적이라고 이름붙이는 것들에 주목합니다. 그런데 새롭고 창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것들은 분명 신선하고 유익한 면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검증이 덜 된 불확실성을 지닌 요소들이기도 합니다. 이런 불확실성에 대한 검증 없이 쉽게 믿어버리고 쉽게 따라가는 모습들이 우리 삶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특히나 저는 이익추구가 목적이 아닌 신앙공동체를 운영(사목)하면서도 느끼는 바가 있습니다. 교회의 가르침이나 공동체가 정해두고 지켜온 원칙이 왜 존재하며 어떤 목적으로 인해 그러한 방식으로 유지되는지에 대해 이해하고 실천해본 다음에 아쉬움을 토로하기보다, 그저 자신의 현재상황을 더 잘 반영하는 것에만 민감한 경우들도 있습니다.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예외적 상황을 반영하기가 더욱 어려워짐을 가볍게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다고 하면서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믿기 힘든 일, 신비로운 사건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정작 우리의 삶은 나아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는 신앙을 통해 무엇을 배웠으며 그 정신과 원칙을 잘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는지부터 살핀 후에, 부족한 것을 메우거나 생기를 더해줄 새로운 것, 신선한 것을 찾는 자세도 필요함을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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