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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몇 달째 자가격리, 재택근무, 온라인수업 등으로 인해 각 가정에서 모든 식구들이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지요. 안전상의 이유등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본의아니게 기러기생활을 하고 계신 형제님이나 가족들도 많구요. 그래서 평소에 비해 손수 끼니를 준비하고 챙겨야 하는 과정을 많이 겪으실 것입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인데요. 평소보다 집중적으로 가족들이 함께 식사하는 때가 많이 늘어나다 보니, '밥상 아이템 고갈'로 인한 고민과 이에 따른 어머니들의 '창작의 고통'도 만만찮으리라 봅니다. 끼니의 감사함을 새삼 생각해보게 되는 장면입니다.

  '뭘 먹지?'라는 고민을 하게 되는 원인 가운데 또 하나가 있는 듯 합니다. 그것은 활동하고 움직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되는데 반해 끼니는 꼬박꼬박 챙겨먹다 보니 '입맛이 덜한' 경우도 제법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지간한 메뉴를 준비해도 크게 식욕이 동하지 않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이런 모습을 보면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더욱 부담감이 커질 수도 있겠지요.

  음식을 맛있게 잘 먹고, 또 식욕이 동한다는 것은 좋은 음식이 있다는 것 못지 않게 음식을 섭취할 사람의 입맛, 신체적 정신적 컨디션은 물론 다른 내,외부의 조건들로부터도 영향을 받는 일임을 생각해봅니다.

 

  요한복음 6장은 '생명의 빵'에 관한 담화입니다. '생명의 빵' 곧 성체는 우리 믿는 이들에게 주어진 먹을거리입니다. 그러므로 이 음식을 영양가있게 잘 섭취하기 위해서는 '이 빵이 영원한 생명을 주는 음식이라는 믿음'이 우선적으로 필요하겠으나, 이와 더불어 우리가 이 빵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도 중요한 조건입니다.

  교회는 성체가 진정으로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영혼의 양식이라고 믿기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성체께 대한 지극한 신심이 이어져오고, 성체를 공경하는 관습도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믿음을 표현하는 것인데, 그런 믿음의 습성 속에는 우리 자신이 성체를 모시기에 합당한 상태가 되도록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담겨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아직도 지키는 관습 가운데 ‘공심재’(空心齋)가 있습니다. 오늘날 공심재의 정확한 뜻은  ‘영성체하기 한시간 전부터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밥을 맛있게 먹으려면 식사 전에 군것질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지요. 이는 과거의 전통에 비추어보면 매우 간소화된 것으로, 60여년 전만 해도 영성체하기 전날 밤부터 물도 마시지 않고, 양칫물도 목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하고, 침도 삼키지 않을 정도로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그만큼 우리 조상들은 성체를 모시기 전에 정성되이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규정의 간소화와 더불어 성체를 정성되이 모실 준비도 소홀해진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성체께 대한 믿음을 전제하고 나면, 과연 그 성체가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고 아쉬움없이 만족할 수 있게 해주는 생명의 양식이 되는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 것은 성체를 잘 모시기 위해 얼마나 준비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음식맛을 제대로 알 수 있는 방법입니다.

 

  요즘 미사참례의 기회가 없어 소위 '성체가 고픈' 교우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후일에라도, 우리의 영혼에 생기를 북돋워줄 정말 맛있는 음식으로 성체를 받아모시기 위해 더욱 정성된 마음으로 준비하여 미사에 참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저 그 음식을 주십시오 하고 매달리기만 하는 사람들처럼 되지 말고, 음식을 먹어도 맛을 음미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 나만의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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