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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혹시 이런 표현을 들어보셨습니까? ‘팍스 로마나’(Pax Romana),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팍스 시니카’(Pax Sinica) ……

로마제국이 이룩한 평화, 미국(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평화로운 질서 등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로마제국, 미국, 중국 등이 세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중심이라는 사실을 표현한 것인데, 이것이 현대적으로는 상당히 정치적인 의미를 담고 쓰이기도 하죠.

 

  예수님 시대는 소위 ‘팍스 로마나’가 구축된 시기였습니다. 서구의 관점에서 볼 때에 당시의 전세계라고 표현할 수 있는 오늘날의 유럽과 서아시아 지역에서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는 로마식 문화와 법률제도였고, 이런 로마의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고대 그리스 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인들의 언어인 라틴어가 오늘날의 영어 같은 국제공용어가 되었지만, 귀족들의 고급교양언어는 여전히 그리스어였습니다(오늘날에도 영국왕실이나 캐나다 등지에서 귀족들의 고급사교언어는 여전히 프랑스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 시대의 그리스인들은 수백년 전까지 지중해 주변지역을 제패하던 과거의 시절을 지나 소위 주변국으로 전락했으면서도 문화적 우월성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민족이었습니다. 학문에 관한 한 여전히 최고 선진국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요. 오늘 독서에는 이런 그리스 문명의 중심지인 아테네 사람들을 두고 하느님에 대해 설명하는 바오로 사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리스식 고등교육을 받은 엘리트였던 바오로 사도의 이야기는 그리스인들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는 듯 하면서 교묘하게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이것을 현혹(眩惑)하는 행위로 볼 수도 있겠지만, 바오로 사도가 하느님에 대한 설명을 해나가면서 가장 중요시한 것은 ‘자신의 확신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 “하느님은 하늘과 땅의 주님으로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는 살지 않으십니다. 또 무엇이 부족하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도 않으십니다.”(사도 17,24-25)

 

  전도하고자 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최고의 지성인이라고 일컫는 아테네 사람들을 두고 지식대결을 벌이는 듯한 상황에서도 가장 중요했던 것은 ‘하느님은 인간의 지성으로 가늠할 수 있는 범주를 초월한 분이라는 사실’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이 초월성을 ‘신비’(神祕), 곧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존재이신 하느님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인간의 지식 혹은 지적 욕구라는 것은 정복의 욕구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입력된 지식과 논리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예측함으로써, 혹은 경험을 통해 주어진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음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곤 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이런 태도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신비이신 하느님과 그분의 뜻’을 두고서는 ‘내가 이해하고 인정할 수 없는 방식이면 알 필요가 없는 것처럼’ 대해서는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만 남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알 수 없고 설명되지 않아도 웬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은 이끌림이나 형언할 수 없는 묘한 직관 때문에 신앙적인 사실이나 관습 등을 받아들이고 살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서 그 선택이 옳았음을 알고 그 뜻도 이해하게 되는 경험들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신앙고백이 더욱 필요한 상황은 미사 중에 신경(信經)을 바친다거나 하는 의례적인 상황보다는, 오히려 내가 인간적인 지식이나 지적 능력으로 설명하고 납득할 수 없는 때가 아닐까 합니다. 특히 이럴 때에 왜 그러한지는 몰라도 어떤 섭리의 작용이 있었음을 후일에 알게 되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약속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게 됩니다 :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요한 16,13)

 

  의구심에 사로잡힐 때,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 우리 중의 누군가가 정복적인 지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 마음이 복잡해질 때 등이 진리가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알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먼저 청해야 할 때임을 오늘 성경의 말씀들과 수많은 신앙선배들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진리의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평화'(Pax Sancti Spiritui)를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 ?
    Abel 2020.05.20 08:26
    아멘
  • ?
    아가다 2020.05.20 08:26
    아멘! 감사합니다
  • ?
    26512 2020.05.20 09:24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평화'(Pax Sancti Spiritui)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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