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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어느 아이가 첫 고백성사를 하는데, 죄를 고백하라고 하니까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 “아버지가 운전하면서 다른 운전자 욕하는 것과, 어머니가 신호등이 빨간불일 때 그냥 막 건너는 것을 알고도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누구나 단점이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그 단점이 상대방과 자신을 멀어지게 하는 장애물이 되기도 하고, 오히려 그것이 상대방과 자신을 이어주는 고마운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그 단점을 좋은 매개체와 계기로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자캐오는 두가지의 단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키가 작은 사람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세관장’(혹은 '세리', 세금징수업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이 두가지 단점 때문에 자캐오가 인생역전에 성공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했지만 키가 작아서 예수님을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때에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합니다.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가고, 예수님의 눈에 띄었을 때 앞뒤 가리지 않고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십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또 집에 모시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았을 것이니, 자격도 없어보이는 자캐오가 예수님을 모셨다는 이유만으로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 정도는 쉽사리 짐작할 수 있겠지요. 그런 여러 가지 피곤함이나 사람들의 시선을 몰라서가 아니라 - 직업으로 유추해 볼 때, 그는 세상 물정에 밝은 사람입니다 - 예수님을 만난다는 사실에 그 모든 것을 알고도 기꺼이 감수했을 것입니다.

 

  당시의 세금징수업자는 로마식 제도에 따라, 먼저 부과된 세금을 선납하고서 세금징수권을 얻어서 행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 돈을 투자(?)했으니 세금을 많이 걷어내는 그만큼 자신에게 이익이 남습니다. 그러니 남을 속이거나 피도 눈물도 없이 세금을 받아내거나 혹은 딱한 사정이 있는 사람에게도 야박하게 굴어야 자기가 먹고 살기 편해집니다. 소위 ‘남을 밟고 일어서야 성공하는’ 직업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재산의 반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횡령한 것은 네배로 갚겠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자기 전재산을 다 준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렇게 해놓고 다시 예전처럼 다른 사람 주머니를 털어서 재산을 모으는 것은 더욱 말이 안됩니다. 어쩌면 그는 예전의 세리생활을 청산, 다시말해 직업을 바꾸겠다는 결심까지 약속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 “이 사람 또한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자캐오는 이 말 한마디를 원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직업적으로나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미루어두고 포기했을 지도 모릅니다만,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그 큰 결심을 전향적으로 이루어냅니다.

 

 자캐오의 태도는 우리 모두가 '다른 이가 아닌 하느님께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아야' 진정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마침 이맘때부터 교회전례의 독서와 복음말씀은 세상끝날 심판의 때를 준비하며 회개하는 삶을 강조합니다. 오늘 자캐오의 모습을 통해 드러나는 회개의 모습은 첫째, 하느님의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평가하는 것, 둘째, 반성하고 고칠 것이 있을 때에 부족하든 만족스럽든 그마저도 하느님께서 판단하시도록 스스로의 판단을 유보하고 그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내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쉽게 비판하고 입에 올리는 것도, 상처받은 것이 아프다거나 혹은 스스로 부끄럽다고 여겨서 하느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게을리하는 것도 모두 회개하지 못한 사람의 모습일 것입니다. 사실 회개도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으며, 온전한 회개는 하느님의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허물을 알아채었을 때에도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피하기보다는 사랑하려 노력하는지, 그렇게 마음을 돌리고 태도를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지를 잘 묵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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