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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신학생 시절, 동기신부에게 들은 이야기를 먼저 말씀드릴까 합니다.

  신학생이던 동기신부가 본당청년들과 함께하는 피정 중에 성경말씀으로 나누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흔히 '말씀사탕'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제비를 만들어 두었다가 뽑아서는 하느님이 내게 이르시는 말씀을 귀담아듣고자 하는 것처럼, 성경을 놓고 아무곳이나 펼쳐서 눈에 들어오는 말씀을 읽기로 했습니다.

  그중에 가장 나이어린, 갓 스무 살이 된 남학생이 펼친 곳은 민수기(民數記)였습니다. 성전의 크기는 가로 얼마, 세로 얼마, 높이 얼마에 기둥은 어떤 크기를 몇 개 쓰고, 지성소(至聖所)는 어떻게 꾸미고 하는 식의 내용이 적힌 대목이었습니다. 만약 자신이 그 말씀을 찾았다면 본인과는 전혀 무관한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굉장히 난감해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그 말씀을 읽고 나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 ‘하느님의 성전은 이렇게 아름답게 꾸며지고 정성이 들어간 곳인데, 저는 그렇지 못해서 부끄럽습니다.’

  동기신부가 순간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답니다. 이야기를 들은 저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은 책속에나 어떤 곳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마음 안에 자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구약시대의 성전은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이 곧 하느님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성전에서 하느님께 예배드리고, 말씀에 귀기울이며 그분의 뜻을 찾습니다. 이렇게 성전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이 표현되는 행위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사랑과 위로를 건네주시고 당신의 생명력을 불어넣어주십니다. 제1독서의 에제키엘 예언자가 성전에서 생명의 물이 흘러 나와 그 물이 흘러 들어가는 곳은 어디에서나 생명이 넘친다고 증언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 성전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삶에 지친 이웃의 마음을 시들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마음도 시들게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시지 않는 오늘 복음 속의 모습은 이렇게 마음이 지치고 시들어버린 이들을 어루만져 주시는 자비로운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바로 당신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시들어버리고 열정이 식어버린 무딘 마음에 채찍질을 해주시는 것도, 병든 이들을 따뜻이 어루만져주시는 사랑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성전을 정화하는 열정어린 모습을 통해 또다른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십니다.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 계시는 성전임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정화하여 깨끗하게 하신 그 성전, 이제는 내 마음이 바로 그 성전입니다. 우리는 이 성전을 오늘 하느님께 봉헌해야 합니다. 오늘은 나의 성전을 하느님께 봉헌해야 합니다. 내 잇속을 차리기 위하여 남의 마음에 못을 박고 피를 흘리게 하며 분쟁을 일으키는 시들어버린 마음을 몰아냄으로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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