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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먼저 우화 한 가지를 소개합니다 :

  어느날 다윗 임금이 반지 세공사를 불러 “나를 위한 반지를 만들되, 거기에 내가 큰 전쟁에서 이겨 환호할 때도 교만하지 않게 하며,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글귀를 새겨넣어라” 하고 지시하였다.

  이에 반지 세공사는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으나, 빈 공간에 새겨넣을 글귀로 며칠을 고민하다가, 솔로몬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그 글귀를 적어 넣고서 임금에게 반지를 바치자 임금은 흡족해 하고 큰 상을 내렸다고 한다.

거기 적힌 글귀는 바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이 말을 상심할 때나 위로할 때에는 잘 쓰는 것을 봅니다만, 좋은 일을 두고도 말하는 것은 잘 못 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좋은 일도 ‘지나갈 일’이 대부분인데 말이죠.

이에 대비하여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고 한결같은 가치, 미래, 결과 등을 바라는 마음도 떠올려봅니다.

 

  그리스도인은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이를 배워서 실천합니다. 사실 신앙을 가졌다고 하여 세상의 미래와 종말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훤히 알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도 ‘다 허물어질 때’(루카 21,6)라는 표현으로 세상의 종말을 연상시키는 언급이 등장하지만, 복음은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열리는 새로운 미래를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줄 뿐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자신의 미래를 보장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건강한 미래를 위해 운동하고, 건강식품과 보약도 먹고, 더 안정적이고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미래를 위해 공부합니다. 시대의 변화에도 둔감하지 않으려고 여러 가지를 배우고 익히며, 저축과 보험 같은 방법으로 경제적으로 안정된 미래를 보장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방식이기도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만큼 지혜로운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 신앙은 자기가 설계하는 자기중심적 미래가 아니라, 하느님이 주시는 미래를 위해 살아가도록 재촉합니다. 예수님을 보면, 그분도  당신의 힘으로 스스로의 미래를 보장받으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실 미래만이 참다운 우리의 미래라고 믿으셨던 듯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삶 안에 하느님께서 살아 계셔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하느님 나라의 가르침은 곧 ‘하느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며 다스리신다’는 것을 체험하고 믿도록 하는 것이니까요. 예수님과 사도들이 그러했듯,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시면 우리는 그분의 뜻을 실천합니다. 그분께서 제시하시는 미래를 보장받는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갈등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당신의 목숨을 보전할 별도의 노력을 하는 대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셨습니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실 미래만을 원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아버지,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

  이 세상은 자기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사람을 오래 살려 두지 않습니다만,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마련하시는 미래를 고대하며 죽음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예수를 부활시키십니다.

 

  신앙은 우리가 하는 일이 더 잘 되도록 하느님의 힘을 빌리는 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우리의 길을 바꾸라고 권합니다. 그리스도처럼 부활하리라는 믿음은 우리의 미래를 스스로 보장하겠다는 환상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미래를 향한 길로 들어서도록 권고합니다. 하느님보다 우리 자신을 더 믿는다면, 우리가 실천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미래를 택한 사람은 하느님께서 제시하시는 현재를 삽니다. 선하고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시선으로 자기 주변을 봅니다. 그리고 그 시선 안에 들어온 현실이 요구하는 바를 실천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선하고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실 일을 이루어가는 도구가 되어, 그분께서 하실 일을 생각하고 실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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