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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어느 가난한 선비가 있었습니다. 그는 글읽기를 아주 좋아해서 밤낮으로 책만 읽었습니다. 그래서 쌀이 떨어지든, 땔감이 떨어져서 방이 얼음장이 되든 관심이 없어 아내의 속을 태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가 일하러 밭에 나가면서 이웃에게 꾸어 온 좁쌀을 멍석에 깔아 마당에 널어놓고는 남편에게 닭을 쫓아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대낮에 소나기가 퍼부었더랬습니다. 아내가 비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돌아와보니, 좁쌀이 멍석째로 물에 떠내려가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남편은 독서삼매경에 빠져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너무나 기가 막혀서 남편 얼굴에다 침을 탁 뱉으면서 “너 같은 바보는 글이나 읽다가 굶어 죽어라”하고 악담을 퍼붓고는 집을 나갔습니다.

  그럼에도 이 선비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책만 읽었습니다. 그리고 뒤에 과거에 급제하여 고을의 원님이 되었습니다. 부임지로 가는 중에 선비는 수소문을 하여 아내를 찾아 가마를 가지고 데리러 왔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을 배반하고 곁을 떠난 죄책감에 못이기고, 타고 가던 가마 안에서 옷끈으로 스스로 목을 매어 죽고 말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 때문에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시면서, 박해를 잘 견디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박해라고 하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생명의 위협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런 박해, 큰 시련은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쇠가 뜨거운 불 속에서 단련되고 두들겨져서 더 단단해지듯, 우리의 믿음도 그러한 시련 속에서 더욱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단, 그 시련을 견뎌내고 이겨내는 노력이 있어야 하겠지요.

 

  요즘은 자유롭게 믿음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쉽게 냉담하고, 신앙을 쉽게 포기하고, 신앙이 마치 기호식품인 양 생각하는 경향이 허다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만이 우리가 바라고 추구해야 할 인생의 목표라는 희망이 있다면 우리의 믿음은 꼭 지켜야 할 것, 잃지 않으려고 애써야 할 가치임에 분명합니다.

 

  선비의 아내는 어려움을 잘 견디다가도 한순간의 선택으로 남편을 볼 면목이 없어져버렸고, 남편의 성공과 영광에 함께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미래의 영광,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행복에 대한 희망으로, 우리의 믿음을 단련시켜 나갈 것을 새롭게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 ?
    클로 2021.07.09 07:39
    '현실'이라는 명목으로의 지나친 타협, 외면을 경계하는 지혜와 믿음을 주소서... 아멘.
  • ?
    K.regina 2021.07.09 16:2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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