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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중국에 나와서 생활하다 보면 교구의 동료신부님들이나 중국에서 살아가는 다른 신부님들을 손님으로 맞이하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신부들끼리 나눌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 보따리를 끌러놓으며 술도 한 잔씩 하다 보면 밤늦게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기도 합니다. 며칠간 손님들을 치르면서 시간을 함께하면서 저더러 피곤하지 않냐고 물으면 저는 종종 ‘나는 하루살이다. 나에게 내일은 없다’라고 농담삼아 말하곤 합니다.

  주어진 상황과 눈앞의 사람에게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내일의 생활에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손님을 잘 맞이하는 본분에 최선을 다하고픈 정(情)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만 살 것처럼’ 산다거나, 그런 마음가짐으로 스스로의 삶을 평가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나 ‘지금의 내가 행복한 것’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의 생각을 ‘현세적 인간’이라고 말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한 생애, 더 짧게는 그렇게 살아가는 자신의 생애 가운데 일순간만을 위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모습 말입니다. 아무래도 이 경우에는 자신의 기분이나 처지, 충동적 선택 등에 따라 일관성이 떨어지는 선택이 점철되는 인생을 살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현재에 집중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을 미래를 위한 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현재에 충실하되, 그 충실한 순간들이 모여 ‘먼 미래까지의 기나긴 시간 혹은 심지어 영원’에까지 가까워짐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경우는 좀 더 일관성있고, 규칙적이며, 윤리적 기준이 확고한 모습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오늘만 살 것처럼 열심히 살면서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없어질 것보다는 더 가치있고 영원할 수 있는 것, 종교적 표현으로는 ‘영적(靈的)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의 모습은 후자에 가까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악령을 쫓아내시는데, 그 과정에서 악령이 외치는 말이 이러합니다 :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루카 4,34)

  지금이 구원받은 최선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이만저만하게 살아가도록 그냥 내버려두라는 식의 표현처럼 들리는데요. 그래서일까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34절)이라고 알아보면서도 자신과 상관없기를 바라는 모습이 보입니다. 예수님을 만났으니 그분을 통해 영원한 생명, 새로운 것을 얻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로 인한 번거로움이나 성가심, 불편함이나 수반되는 고통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 같아 보입니다.

 

  행여나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진 것들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더 악령과 같은 마음일 때는 없는지 되돌아봅니다. 그리고 오늘 독서의 말씀이 일러주듯, 열심히 살아가면서도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기를 다짐해봅니다 :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1코린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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