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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을 통해 인류에게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시고 구원에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우리도 삼위일체라는 놀라운 사랑의 신비를 살아가고자 주님께 응답을 드리는 데에 오늘 축일의 깊은 뜻이 있습니다.

 

  삼위(三位), 곧 세 위격이라고 할 때에 그 이름이 무엇입니까? ‘성부, 성자, 성령’입니다. 이 이름에 대해서 잠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성부(聖父), 곧 ‘아버지’라는 이름은 혼자서 가질 수 있는 이름이 아닙니다. 자식이 없는데 아버지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성자(聖子), 곧 ‘아들’이라는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이 없으면 ‘아들’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xx의 아버지’이고 아들은 ‘xx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아들이라는 이름들은 서로와의 관계가 없이는 붙여질 수 없는 이름입니다. 늘 함께 있기 때문에 각자를 아버지, 아들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 아버지와 아들이 늘 함께 붙어있으려면 힘들지 않겠습니까? 서로 다르기 때문에 말입니다. 아무리 친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24시간 365일을 화장실 갈때까지 붙어다닌다고 생각해보십시오. 힘들고 짜증나고 서로 싫증이 나기 마련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와 성자 예수님은 늘 함께 있습니다. 두 존재 안에(사이에) 어떤 것도 방해하거나 막을 수 없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바로 성령(聖靈)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둘이 좋아서 죽고 못사는 그런 사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배타적인 사랑, 자기네들끼리 잘먹고 잘살기 위한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둘이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으로 인해 다른 이들까지도 그 사랑의 관계에로 초대하고 싶어하는 사랑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사랑이 차고 흘러넘쳐서 그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로 확장시키고 싶어하는데, 그래서 하느님의 그 흘러넘치는 사랑은 세상을 창조하게 만들었고, 사람을 지어내시도록 했습니다. 그 사람을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하는 관계에 초대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에 참여하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구원되는 것입니다.

 

  사람들끼리 뭉치거나 좋아한다고 하면, 자기네들끼리 좋아서 죽고 못산다고 하면, 그 관계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른 누군가가 그 관계에 끼어드는 것을 싫어할 것입니다. 방해받지 않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 관계를 잘 유지하는 데에만도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이 끼었을 때, 이질적인 누군가로 인해 서로가 상처받게 될까봐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서 닫힌 공동체, 배타적인 모습으로 변질되어 가기 쉽습니다. 그 안에 안주하게 됩니다. 삼총사, 독수리 오형제, 칠공주 등으로 이름지으면서 패거리가 형성되면 다른 무리들이 끼어들 자리가 없습니다. 배타적인 공동체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이래서는 사랑으로 충만한 공동체, 모든 이를 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사랑의 공동체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 방식대로의 사랑만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이루시는 삼위일체의 공동체는 다른 이들을 그 사랑의 관계에 끌어들이기 위해서 항상 열려있습니다.

 

  우리가 본당에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하고, 교우들끼리 모임을 가지는 것도 우리네들끼리 잘먹고 잘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신앙을 지니고 산다는 것의 참의미와 그 보람을 느낌으로써 그 체험을 다른 이웃들에게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본질적으로 우리 교회공동체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살아가는, 열린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들끼리 함께 지내는 것이 너무너무 좋을 때, 그 좋은 것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자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개방적인 자세로 이웃들을 초대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 우리가 삼위일체의 신비를 사는 것입니다. 이질적이고 새로운 상대방과의 관계로 인해 상처입을까봐 두려워하기보다는, 사랑하기에 더욱 노력할 수 있는 계기로 삼는 것이 중요합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를 잘 되새기게 하고 그 신비를 체험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우는 마더 데레사의 말을 기억해봅니다.

  “삶의 가장 큰 모순은, 상처입을 각오로 사랑하다 보면, 상처는 없고 사랑만이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 ?
    Abel 2020.06.07 07:52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개방적인 자세로 이웃들을 초대하는 공동체...!!
    아멘!!!
  • ?
    아가다 2020.06.07 08:15
    아멘! 감사합니다~
  • ?
    참사람 2020.06.07 08:29
    배려 나눔 사랑 …
    아멘 아멘~
  • ?
    박미란 2020.06.07 10:02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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