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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속 제자들은 물이 거의 가득 찬 배 안에서 불평을 터뜨립니다.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마르 4,38). 요즘 우리의 기도 같기도 합니다. 요동치는 배 안에서조차도 예수님은 오히려 평온해 보이십니다. 복음 전파에 지치신 예수님께서 정말 잠드셨을 수도 있지만, 예수님은 기대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첫째, 위기의 제자들이 ‘당신과 함께 있음’을, 둘째, 어떤 유혹의 상황에서조차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말입니다.

 

  나의 모든 일상이 은총의 시간처럼 흐를 때도 있습니다. 마치 순풍에 돛을 단 듯. 그러다 마치 복음 속 ‘거센 돌풍’처럼 건강 문제든 경제적 어려움이든 가족관계 문제 등이 생겨 내 삶이 위기를 맞이하면 주님은 이제 불평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급기야 내 기도만 외면하는 것 같고, 나만 은총에서 제외된 것처럼 느끼다가 결국 주님은 내 곁에 계시지 않는다고 한숨짓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 4,40)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믿음의 대상이자 근거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마르 4,40)고 꾸짖으시지만, 여전히 제자들은 이내 잠잠해진 호수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들은 왜 늘 함께 계신 예수님께 시선을 두지 않을까요?

 

  제1독서의 욥은 주님의 응답이 있기 전, 현실 속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급기야 하느님께 불평을 쏟아냈고, 주님께서는 여전히 ‘폭풍 속에’ 함께 계십니다. ‘불평꾼이 전능하신 분과 논쟁하려는가? 하느님을 비난하는 자는 응답하여라.(41,3 참조) 주님의 응답은 여전히 ‘고통 중의 욥처럼 폭풍 속에서’ 말씀하십니다. 결국 욥은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 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먼지와 잿더미에 앉아 참회합니다.(42,5-6) 이제야 욥은 주님을 눈으로 목격했고, 고통 속에 함께 계셨던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후 큰 복을 받습니다. 폭풍 속에서조차 욥의 시선은 주님께로 향했으니까요.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가 되살아나신 예수님을 언급하며 세상과 그리스도를 보는 “속된 기준”(2코린 5,16)이 바뀌어야 함을 강조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새로운 피조물”(2코린 5,17)임을 강조하십니다. 신앙인이든 그렇지 않든 고통의 질량은 똑같습니다. 주님을 믿어 신앙생활을 하든 그냥 평범히 살든 유혹은 매일 다가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 안에,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선은 고통스러운 현실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나와 함께 계시는 주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배가 침몰할 것처럼 느끼자 제자들은 주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누구 이신지도 잊은 지금 믿음의 시선으로 나와 함께 계신 주님을 바라봅시다. 힘내세요. 여러분!

 

 

군위군청소년수련원 원장 | 장희만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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