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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마르 10,17)” 부자 청년의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들릴 수도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위험한 질문입니다. ‘미래에 있을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며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선택하고, 미래에 초점을 맞춘 채 현재를 거기에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사이비 종교에 이 질문을 했다면 그 청년은 사이비 종교에서 시키는 대로 뭐든지 하려고 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로마의 지배를 받고, 헤로데의 봉건 통치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유대교 지도자들은 메시아가 와서 우리를 구원할 때까지 참고 견뎌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세상은 에덴에서 쫓겨나 고통받는 곳이고, 현재는 미래를 위해서 참고 견뎌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교 지도자들과는 정반대로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행복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버지의 나라는 지금, 이 땅에 임하시도록 기도해야 하고, 아버지의 뜻은 지금, 이곳에서 이루어지도록 힘써야 한다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먼 미래, 저 먼 곳의 것이 아니라지금’, ‘이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마르 10,21).” 예수님은 그가 율법의 본질인 사랑을 보지 못하고 법 조항으로 지켜왔다는 것을 아십니다. 율법으로써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계명을 살아가도록 일깨워 주십니다. 그리고 인간이 소유한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것이라는 하느님 창조의 의미를 일깨워 주십니다. 일종의 충격요법입니다. 비록 그는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지만, 후에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깨달음을 얻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오늘 복음의 부자 청년처럼 많은 그리스도인이 천국을 위해서 현재를 참고 견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순되고 부조리한 상황에서도 사랑은 참는 것이라고 신앙을 왜곡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따로 분리되어 종교의 영역 안에서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키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입니다. 현재에 집중하고, 현재에 감사하고, 현재에 행복할 때 미래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부자 청년의 질문은 잘못되었습니다. 질문을 올바로 고친다면, 그는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님께 돌아갈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야 할 것입니다.

 

 

 

신평본당 주임 | 성용규 도미니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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