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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작디작은 인간이 되셨지만, 작았던 인간은 크게 되고 싶어서 하느님을 떠나, 자신을 커지게 해 줄 것 같은 자본과 권력을 찾아 나섭니다. 작디작은 인간들은 커지려고 서로 갈라지고 흩어집니다. 나보다 못한 저 인간이 나보다 더 크지 못하게 내리누르기도 합니다. 사악한 자본가들과 권력자들은 작은 인간들이 서로 잘 통하고 잘 뭉칠까 걱정하며, 너희도 우리처럼 커질 수 있다고 부추깁니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으리라 여기며…. 크게 되고 싶은, 어떤 작은 인간들은 자신을 커지게 해 줄 것 같은 사악한 자본가들과 권력자들을 무척 걱정합니다. 작디작은 우리가 서로 잘 통하지 못하고, 잘 뭉치지 못하는 것은 각자 커지기로 마음을 먹은 후부터가 아닐까요!

 

 하지만 우리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하시며 더 작아지기로, 더 낮아지기로 마음을 정하십니다. 오늘, 작은 예수님께서는 작은 여인의 작은 봉헌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십니다. 그날 성전에서 가진 것을 자랑했던 자본가들과 권력자들은 결코 볼 수 없었을, 보았더라도 무시하고 경멸했을 그 여인의 봉헌을 예수님께서는 소중하게 알아차리십니다. “원래 작은 것들은 서로 통한다. 그런 것들은 잘 뭉친다.”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작은 예수님의 전적인 마음과 작은 여인의 전적인 마음은 서로 통하고, 작은 예수님의 전적인 봉헌과 작은 여인의 전적인 봉헌은 서로 겹쳐집니다. 우리가 서로 커지기로 마음먹으면, 우리는 예수님과도 사람들과도 서로 통하지 않고 서로 뭉쳐지지 않을 것입니다. 서로 멸시하고 무시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작아지기로 마음먹으면, 서로 격려하고 서로 받아들이고 서로 동등한 사이가 될 것입니다. 서로 통하고 서로 뭉쳐질 것입니다.

 

 

상모본당 주임 | 전세혁 예로니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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