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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건강하신 아버지께 유산을 미리 달라고요? 유산은 원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 받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먼저 유산 이야기를 꺼내셨으면 몰라도, 멀쩡히 살아계신 아버지께 차마 입에 올리기도 죄송스러운유산을 미리 달라는 건 정말 아닌 거 같습니다. 저도 그런 아들에게는 별로 유산을 물려주고 싶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설사 유산을 물려주더라도 그것을 잘 지키지 못하고, 좋은 곳에 쓸 줄 모르고, 자식에게도 그 재산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면 더더욱 물려주지 않을 겁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 말씀은 자식이 아주 잘못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아버지께 돌아오면 아버지는 용서해 주시고 받아주시는너무나 너그러우신 분이시라는 걸 강조하신 내용 같습니다. 아무리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하지만, 사람 사는 곳에서는 부자관계라 하더라도 엄연히 상식과 예의라는 게 있습니다.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한미리 받은 유산을 날려먹은 아들을 아버지는 기꺼이 받아 주십니다. 그 마음이 바로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너무 쉽게 용서해 주면 교육상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비슷한 경우가 반복될 수도 있고, 아버지의 그 큰 사랑을 약점 삼아 더 나쁜 짓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충분히는 아닐지 몰라도적절히훈육의 과정을 거쳐 아들을 받아주어도 괜찮았을 것입니다. 그마저도 하지 않고 아들을 받아주신 아버지의 위대한 사랑에 감동할 뿐입니다.

 

  아들이 타지에서 굶어죽기 싫어서 정신이 들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진정한 회개나 뉘우침으로 보기는 힘듭니다. 백번 양보해서 회개의 시작이나 계기 정도로는 봐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잘못에 대한 진정한 뉘우침도 없었던 아들을 받아주신 한없이 너그러우신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부모로서 자식을 못 만난다는 것만큼 가슴 아픈 일이 또 있을까요?

 

  ‘나는 지은 죄가 많아서 성당에 못 가겠다.’는 말씀을 하신 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진심일 수도, 농담일 수도 있는데 저는 솔직히 어느 쪽이든 믿기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패륜에 가까운 죄를 지었던 아들이 제 발로 찾아와도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는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냥 성당에 나가기 싫다거나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게 더 솔직한 고백이 아니었을까요? 어설프게 겸손한 사람을 흉내 내는 말이나, 하느님께서는 나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않으시는 무자비하고 잔인한 분으로 취급하는 말은 차라리 안 하니만 못하니까요.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냥 한없이 너그러우신 아버지 품에서 진정으로 뉘우치고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 게 훨씬 더 솔직하고 인간적이고 신앙적인 모습이 아닐까요?

 

 

성북본당 주임 | 이강재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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