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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강에는 매월 4, 9일에 5일장이 섭니다. 장날이 되면 도로 곳곳에 좌판이 열리고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죠. 세탁소를 운영하는 강회장님 가게는 장날이 되면 쉼터가 됩니다. 장을 보러 오신 손님들은 물건이 아닌 5일 동안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강회장님은 다방커피를 주문해서 손님 대접을 하십니다. 한 번은 어떤 다방 자매님이 오셨는데 강회장님이 “몇 년째 성당에 가자고 공을 들여도 꿈쩍도 안 하는데, 신부님이 오라고 하면 성당에 나올지도 모르겠네요.”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바통을 이어받아서 “성당에 한 번 오세요.” 하고 권면해 보았습니다. 나중에 다른 분에게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성당에 못 나오는 이유가 직업 때문이라고.

 

 

 

오늘 복음 말씀은 세관장 자캐오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예리코라는 도시는 교통의 요충지로 무역거래가 왕성하게 이뤄지는 대도시였다고 합니다. 그런 도시의 세관장이었으니 엄청난 고위직이죠. 그러나 로마의 식민지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세리들은 공적 죄인이었습니다. 동족의 고혈을 짜서 로마 당국에 바치는 세리들이었기에 사람들은 로마의 앞잡이, 매국노라고 멸시했습니다.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자캐오의 모습은 예수님을 보고 싶은 간절한 열망과 동시에 그의 안타까운 처지를 담아냅니다. 키가 작은 자캐오. 군중이 앞을 가려 볼 수 없다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예수님을 앞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캐오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것을 아니까요. 그래서 사람들과 떨어져서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을 찾은 곳이 바로 돌무화과나무 위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것입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19,5) 온갖 멸시와 냉대로 투명 인간보다도 더 못한 처지로 지내던 그에게 이름을 통해 한 존재로 대우해 주시고, 방문을 통해 친구가 되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손 내밂. 자캐오는 그 손 내밂을 마다할 수 없었습니다. 철저한 외로움 속에서 그토록 그리워하고 바라던 소망이었으니까요. 자캐오는 “내려오너라.”라는 말씀대로 자신을 내려놓습니다. 서러움과 무시를 당하지 않으려고 쌓아왔던 재산,사람들 위에 있음을 과시하고자 권력으로 부당하게 횡령했던 금전을 내려놓습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루카 19,9)

 

 

 

오늘날 우리 주변에 다른 자캐오가 있습니다. 직업 때문에, 과거 때문에 성당에 오고 싶어도 발걸음을 없는.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차가운 말이 아픔으로 다가와 피하고 싶고, 가까이하기가 두려운 나머지 돌무화과나무 위에서 외로이 바라보는 자캐오가 있습니다.

 

 

 

1독서 지혜서는 이렇게 하느님을 소개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는 ,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믿고 따른다면, 우리 역시 예수님처럼 다른 자캐오를 찾아 나설 것입니다.

 

 

 

 

 

안강성당 주임 | 신장호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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